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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움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허나 정의로운 사람은 늘 소수다.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불의하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냥 묻어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겸손인양, 조용히 대세에 휩쓸려갈 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익명성을 자처하는 모양이 아니라, 그저 대부분은 직감이나 눈치에 의해 살아간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다수결에서 승리를 얻어오는 데 가장 중요한 밭이다. 이들을 자기 편으로만 만든다면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합법적으로 독재를 거머쥘 수 있게 된다. 민중이 개, 돼지라고 하는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은 일차적으로 서민의 입장에서 굉장히 모욕적이지만, 님비 현상이 이곳 저곳에 팽배해 있고, 자신이 직접 뜻하진 않았으나 결국엔 자기와 자기 가족의 유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문화 안에 깊숙히 물들어 있다는 것을 보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 그저 그냥 감정 상하는 욕 정도로 웃어 넘길 말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불의한 방법으로 피라미드 구조의 윗대가리에 앉게 된 사람들이 그러한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문제인 것이지, 만약 그 똑같은 의미의 말을 완곡하게 바꾸어 민중들이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스스로 나오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모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난 생각한다. 바람직한 민중이 되면 되는 거다. 민중이 정의로우면 되는 거다. 민중은 늘 윗대가리들의 불의함을 탓하고 원망하는 입장에 서 있어왔지만, 사실 그렇게 남탓만 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안타깝지만, 아마도 그 민중들 중에서 어쩌다가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이 욕해왔던 이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결국 윗대가리들이 불의해서 사회가 불의하게 돌아가게 되고 민중은 늘 피해자의 입장에만 처한다고 보는 논리는 틀린 셈이다. 단지 윗대가리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거고, 민중은 그 힘에 억압받아 왔던 거라고 보는 논리가 오히려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 민중은 그 억압을 받고 싶지 않아 억압하는 자리로 가고 싶어한다. 이는 군대 이등병 때 고참들에게 당하던 그 갈굼을 자기가 고참이 되어서 똑같이 이등병에게 대물림해주는 논리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사회 전반적으로 불의하다고 보는 게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어쩌다 정의로운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마주하게 될 땐, 눈물이 나는 거다. 그것이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눈물 안에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반성이 녹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개, 돼지에 대한 발언이 필요 이상으로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것 역시 단지 그 말이 인격모독적이라서라기 보단, 자기 자신이 왠지 모를 찔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의 말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모두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은 하나님나라다. 인간 사회의 이러한 모습은 창세기 3장에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말미암은 죄와 악의 결과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다. 완벽하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위의 문제를 해결한다. 아니, 단지 위의 모습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죄와 악을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위의 문제도 해결되어진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일 듯 싶다. 하나님나라는 정의롭다.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고 가르치며 전달하는 공동체다. 나는 간절히 이러한 공동체가 만들어져 세계 각처에서 남은 자들에 의해 존재하고 지속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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