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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복잡하게 좋은 나?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4. 1. 13:53

복잡하게 좋은 나?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132페이지)
-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133페이지)

비수가 되어 깊숙한 곳을 찌르는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듯이 나는 저 문장을 읽은 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산소가 희박한 것도 아닌데 숨이 찼다. 문장을 만나고 이제야 현실을 자각한 사람처럼, 나는 또다시 나를 잃고 살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미련함이 또 한 번 드러난 순간이었다. 

타자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자를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는 것은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그건 무례함으로 발현된다. 이런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신을 중심에 둔다는 것인데, 다분히 이분법적인 논리로 자신을 선으로 타자를 악으로 상정하는 우를 쉽게, 너무나도 쉽게 범하게 된다. 자기 안에 갇힌 채 연속적으로 진행된 합리화는 언젠간 낭중지추가 되어 타자를 찌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도 찌르게 되어 모두가 파국을 맞이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옹색하다. 진짜 좋은 사람은 복잡하지 않다. 복잡하면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함정을 그 자체에 품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 역시 모순이다. 진짜 나쁜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면 나쁜 사람이 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말에도 역시 함정이 있다. 

이 두 가지 논리를 가지고 두 번째 문장을 읽으면 비로소 이해와 함께 동의가 된다. 특히 문장의 뒷부분,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에서 그렇다. 나를 찔렀던 것도 바로 이 문장이었다. 맞다, 정말 맞다.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와 타자를 첫 문장에서처럼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뒤틀린 세상을 만들어낸다.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 판단의 기준은 바로 나, 나의 유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정해놓고 객관적인 것처럼 공정한 것처럼 타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복잡한 배려’는 진정한 배려라고 할 수 없듯이, 나의 유익을 이중 삼중으로 교묘하게 숨기고 마치 타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복잡한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 모두가 대체로’라는 부분에서 위로를 얻는다. 나만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가 대체로 그렇다는 것. 인간을 조금씩 알아가는 건 느리고 힘든 과업이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나는 이 일에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낀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 믿게 된다. 그러지 않고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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