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읽기와 쓰기

작가의 세 가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5. 20. 09:08

작가의 세 가지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읽거나 쓰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작가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겸허히 그리고 기꺼이 그리고 감사히 받아들인다.  

읽고 쓰는 일이 좋다. 때론 하루 종일 이것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만큼. 그러나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준비사항이 있다는 걸 비교적 최근에 제대로 깨달았기에 여기서 좀 나눠 보려고 한다.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체력이다. 읽고 쓰는 일은 밤샘 작업하여 하룻밤 만에 끝내는 벼락치기가 아니라 평생을 지속해야 할 일종의 사명이기에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한 지속이기 때문이다. 힘이 모자라면 사소한 것들에도 짜증이 나고 걸려 넘어진다. 그리고 혼자 세상과 담쌓고 산속에 들어가 은둔, 칩거할 게 아니라면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족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상호 이해와 배려가 필수인데, 이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체력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진정성과 여유 또한 가시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몸의 움직임이 뒤따라야 한다. 진정성과 여유가 행동과 함께 하지 못하면 이론이 되고 만다는 걸 여러 번 경험하면서 나는 적절한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보여줘야 할 때는 보여줘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상대방이 헤아려서 알아채야 하는 게 아니다. 보여주면 된다. 쉽다. 사람은 말보다 행동에 약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되겠다. 종합하자면 체력은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온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운동에 힘쓰지 않으면 아무리 당신이 작가라는 정체성을 띤다 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작가라는 정체성을 함부로 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거북목, 휘어진 척추, 미련한 뱃살, 펑퍼짐한 엉덩이, 앞으로 굽은 어깨, 날씬한 게 아니라 허약해 보이는 팔다리로부터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작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지속할 수 없다. 성실한 지속은 작가의 생명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작가 역시 인간인지라, 체력이 필수다. 

그다음으론 인내다. 읽고 쓰는 행위는 연속적이다. 끝과 끝이 보이는 선분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이다. 물론 그 직선을 고배율 현미경으로 보면 높낮이가 있는 곡선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함부로 펜을 꺾겠다는 말을 하는 것도 호기롭게 보이긴 하나 경솔하게도 보인다. 자신이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졌다고 느낀다면 그건 두 번 다시 없어지지 않는다. 그만 쓰겠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작가에겐 죽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덜 쓸 수는 있어도 안 쓸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쓰고 싶어도 안 써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는 이유는 에너지를 얻어 사용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다. 매일 쓰기 위해서는 매일 읽어야 한다. 읽기는 쓰기의 음식이다. 유일한 음식이다. 여기서 읽기란 기본적으로 독서를 말하지만, 나는 관찰이라는 단어로 확장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잠깐동안의 귀찮음만 이겨내고 신발만 신으면 우린 산책을 나설 수 있다. 걸으면서 눈과 코와 귀를 이용한 공감각적인 관찰을 하는 행위도 나는 소중한 읽기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읽고 자연을 읽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사건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쓰기의 재료가 된다. 그러므로 쓰기의 지속을 위해서는 읽기가 언제나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데, 읽기만 하다가 쓰기가 귀찮고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그렇다. 그러나 먹기만 하고 뱉어내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마련이듯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작가는 써야 한다. 아마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읽고 쓰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이뤄지는 하나의 여정인데, 이 두 가지 중 하나에 치우칠 때가 많고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인내다. 프로 정신은 일이 잘 풀릴 때 필요한 게 아니라 일이 잘 안 풀릴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견뎌내는 힘. 당신이 작가라면 반드시 장착해야 할 무기다.  

마지막으로 용기다. 누군가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읽고 쓰는 일의 무용성에 대해, 즉 이런 거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빠질 때가 온다.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많고 이런 걸 써봤자 아무도 읽어주지도 않을 텐데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실의에 빠질 때가 온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글은 읽혀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많다. 그러나 당신과 똑같은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초기에는 문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꾸준히 쓰다 보면 생긴다. 어떤 패턴이 생기고 당신의 생각과 마음이 담기게 된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고유한 것이기에 그렇게 탄생한 글은 고유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꾸준히 읽되 자기만의 글을 써내려는 의지를 절대 버리면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글 하나를 완성해도 호응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물론 당신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경우에). 단 한 명만 읽어줘도 고맙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글 하나로 뭐가 되지 않는다. 수십 편, 수백 편, 수천 편이 넘어가다 보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그 글이 결국 나의 분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라는 걸 우린 사회생활에서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글도 그렇다. 유명해져서 뭔가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욕망에서 빠져나올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실망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아무도 내가 쓴 글에 반응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읽어주고 알아준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지속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믿길 바란다.  

체력, 인내, 용기,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용기이니라.^^ 글쓰기를 사랑하는 작가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