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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고 도 풍성한 읽기를 위해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의도적으로 느리게 읽는다는 건 그 책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마지막 즙까지 모조리 빨아먹기 위해서다. 살다 보면 그런 책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운명을 믿지 않아도 운명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압도되는 그 기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게 되는 그 마음. 책 읽는 기쁨을 증폭시키고 강화시키며 지속하게 하는 힘이다.
그런가 하면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는 책도 있다. 읽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다는 건 나의 한계를 직시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책을 덮을 것이냐, 느리더라도, 힘들더라도 계속 읽을 것이냐.
편하고 쉬운 소설만 읽게 되면 자칫 그 속도에 젖어 모든 기준을 거기에 맞추게 될 수 있다. 조심해야 할 때다. 아마도 이런 부류는 소설을 읽어도 더 이상 배우는 게 없을 것이다. 물론 독서는 일단 유희이기에 시간 때우기로 그런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10을 가진 책에서 1밖에 빨아먹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고 따져볼 수 있을 책을 심심풀이로 읽고 내던지게 된다면 그건 책을 대하는 바른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책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읽는 이의 자세 때문이라면 그 독서는 유희의 차원을 넘어 학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살짝 삼천포로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느리게,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책 읽기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설을 보통 한 시간에 50페이지 정도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그런 책은 한 시간에 5페이지 정도밖에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집중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이런 책 읽기는 괴롭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그리고 이런 책을 집중해서 읽는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단련시킨다. 깊고 풍성한 읽기를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전이기도 하다.
신학책, 철학책, 인문학책을 늘 가까이 두고 천천히 읽어나간다. 감상문으로 쓸 만큼 이해하고 소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꿋꿋이 읽어나간다. 지난한 시간을 견뎌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도, 이런 거 읽어서 뭐 하나 싶은 유혹이 들어도, 그래도 꿋꿋이 읽어나간다. 더 깊고 더 풍성한 읽기를 위해서. 독서가 유희라는 것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지속해서 느끼기 위해서. 즐기는 것과 계속해서 즐길 줄 아는 것의 차이를 덕분에 알게 된다. 즐긴다는 건 치열함과 성실함을 전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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