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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모임에 대한 사랑
무카이 가즈미 저,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고
저자 무카이 가즈미는 번역가와 사서로 살아오며 평생 책을 가까이했다. 학생 시절 번역 선생님의 권유로 독서회에 참석하게 된 이후 어느덧 선생님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저자는 30년이란 세월을 넘기며 독서회를 지속하고 있다. 하나의 일을 10년 넘게 한 사람을 소위 전문가라고 부른다면, 저자는 번역가라는 직업만이 아닌 독서회 리더로서도 베테랑 중 베테랑에 해당되는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했음이 틀림없다.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거나 기획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다.
제목에서도 강조하고 있듯 30년이라는 세월은 누군가에겐 전부일만큼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책을 사랑하고 독서모임을 사랑하는 나로선 그 기간 동안 같은 독서회를 지속했다는 그것 하나만이라도 상을 받아 마땅한 이유라 생각한다. 독서모임은 직업과는 달리 수익이 창출되기는커녕 오히려 돈이 드는 일이다. 적어도 책을 사고 모이는 장소를 마련하고 다과를 함께 하기 위해선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은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따져보면, 25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한 시간에 50페이지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총 5시간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5시간을 내리 집중하며 책을 읽으라는 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 5시간은 10시간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그것마저도 며칠, 혹은 몇 주일에 걸쳐 조각나는 게 보통이다. 독서 시간이 늘어지고 조각날수록 책의 내용은 점점 더 망각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고 급기야 강박이 생기기도 하며 스트레스가 되어 독서모임의 무용성을 주장하게 되기도 한다. 일에 치여 쉼을 얻고자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독서모임에 치이게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일로 여겨지는 독서모임이 또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로 여겨지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같은 독서회를 지속할 수 있었는지, 즉 지속 노하우에 대해서였다. 나머지 하나는 독서회에 대한 저자의 태도였는데, 번역자와 사서라는, 책과 떨어질 수 없는 직업이라는 이유가 독서회를 지속하는데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저자는 과연 독서회를 지속할 수 있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지속 노하우에 대한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누구든지 이 방법대로만 하면 30년 독서모임 지속할 수 있습니다,라는 노하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 독서모임 가족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지, 그들의 독서모임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그들 하나하나가 독서를 얼마나 일상 속에서 누리고 있는지, 독서모임에 나와서 다른 구성원들과 얼마나 적절한 거리를 두고 소통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어나갈 것인지, 어려운 책이라도 함께 읽으면 완독은 물론 깊고 풍성한 이해로 인해 삶도 깊고 풍성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독서모임이라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진 않지만, 어떤 비법 같은 노하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고 또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독서모임의 지속은 리더의 열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은 성취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내게 이 결론은 내가 몸담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역시 감사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나의 열정을 묻어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가 번역자와 사서라는 일을 평생 해 왔다는 사실이 독서회를 지속하는 비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늘 참석하는 독서모임 구성원들은 리더의 직업이나 성향, 이력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독서회도 저자 이외의 번역자가 두세 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다른 구성원들은 저마다 다른 직업과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서회의 지속은 직업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히려 더 중요한 키는 책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싶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으며 저마다 가진 풍성한 삶을 나누는 모임이 바로 독서모임이고, 그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요체는 아무래도 책에 대한, 강요할 수 없는, 애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독서모임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적당한 거리에 대해서도 쓴다. 책을 나누다 보면 삶을 나누게 되어 있는데, 그 나눔이 잡담으로 이어지거나 책과 상관없는 곁길로 가는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고도 쓴다. 책을 함께 읽고 만남을 계속 가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 가까워지지만, 독서모임 시간에는 회포를 푸는 게 아니라 책을 중점적으로 나눠야 한다고도 쓴다. 독서모임을 거의 십 년간 지속하고 있는 나는 이런 저자의 말들에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나에게 이 책은 여러 위로와 도움이 되었다. 한 번도 독서모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적어도 책을 사랑하고 독서모임을 참석한 경험이 있거나 독서모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 크게 울려 퍼질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거니와, 문화가 다른 일본에서의 이야기라 여기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얼마나 작동할지에 대해 우려도 되지만, 책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므로, 나는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정은문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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