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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으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책 세계를 만끽하기
김성신 저, ‘서평가 되는 법‘을 읽고
전문 서평가 김성신이 쓴 이 책의 부제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 책 세계를 만끽하기 위하여‘이다. 제목인 ‘서평가 되는 법‘과 연결시키면, 부제에서 말하는 읽고 쓰는 사람이란 곧 서평가를 뜻한다. 이 책을 통한 저자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서평가가 되어 책 세계를 만끽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분량도 적고 쉬운 문체로 써졌기 때문인지 수영 강습받는 아들을 한 시간 동안 기다리며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저자의 메시지에 대체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서평 혹은 서평가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 전적인 동의는 할 수 없었다.
저자처럼 나 역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동영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독서문화가 사라지거나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은 딱히 긍정적이진 않으나 대세가 어떻게 되든 나는 죽는 날까지 독서운동가로서 살아갈 운명을 느끼고 있으며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어떻게든 책의 유용성과 독서의 묘미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 시청을 자제하고 책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도록 애써볼 요량이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나는 독서모임을 권하곤 하는데, 그것과 곁들여서 꼭 권하는 게 있으니, 그건 독후감상문을 짧게라도 써보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을 일 년 반 동안 함께 하며 실제로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눈치 빠른 독자는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저자의 메시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서평과 감상문의 차이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감상문이 아닌 서평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사용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서평과 감상문을 구분하고 둘 중 감상문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서평이라는 단어가 가진 위압감 아닌 위압감이 불편하다. 또한 책 세계를 만끽하기 위해 굳이 서평가가 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서평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정도로도, 아니 서평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방법이 오히려 더 책 세계를 만끽하기 쉽다고 생각하고, 이 방법이 더 대중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나도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서평이 아닌 감상문 쓰기가 나의 첫걸음이었다. 지금도 나는 서평은 모든 사람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감상문을 쓰면서 독서를 마무리하는 습관만 가져도 충분히 독서의 맛과 힘을 체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서평과 감상문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는 책을 치우치지 않게 객관적으로 소개하여 미래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서평이라 정의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쓰면 서평이다,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저자 스스로도 동의하지 않는 정의일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저자 역시 서평다운 서평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평이 가져야 할 중요한 조건으로써 공공성을 꼽는다. 단지 책이 잘 팔리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서평은 서평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말이다. 서평과 광고를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공공성이 결여된 서평은 서평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저자의 말에 완전 공감했다. 생각보다 많은 서평들이 현실에서는 객관성을 잃은 채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편파적이고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공공성이란 객관성, 공정성, 정확성 등을 지칭하는 용어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즉, 저자가 정의하는 서평이란 책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정확하게 소개하고 평가하는 글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내가 정의하는 감상문은 독자의 고유한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는 글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땐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글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글일 가능성이 농후한 글이 바로 감상문이라는 말이다. 나는 서평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것이 오히려 책을 더 사랑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공성이 없어도 충분히 책 세계를 만끽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은 서평의 요체이긴 하지만, 책 세계를 만끽하기 위해 독자들이 꼭 가져야만 하는 요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도 누군가가 읽은 책이 읽고 싶어질 때는 그 사람의 주관적인 반응과 개인적인 변화 때문이지, 그 책이 가진 객관적이고 정확한 가치가 파악되었기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쓰인 서평을 읽으면 그 책의 정체성을 공정하게 파악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항상 따라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가 운동하는 습관과 건강한 식습관을 몰라서 안 하는가? 정확한 지식이 과연 우리를 행동으로 이끄는가? 나는 아니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고 살아온 대로, 습관을 좇아 사는 존재이며, 이성보단 감정에 의해 행동으로 더 자주 옮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띠고 잘 쓰인 서평이 아닌, 주관적이고 개인적일지라도 어떤 내 안의 정서를 자극하거나 어떤 은밀한 감정과 접점을 이루는 감상문이 그 책을 손에 들게 만들 확률이 나는 더 높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저자와 같은 지향점을 가지지만, 저자와 다른 방식, 즉 서평이 아닌 감상문을 씀으로써 책 세계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평은 필요하다. 그러나 서평을 쓰는 사람은 소수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독자가 서평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대신 독서의 마지막 단계로 감상문을 짧게라도 쓰는 습관을 들인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책과 사랑에 빠질 확률이 더 높을 것이고, 책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록할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어느덧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평가도 감상문을 쓰는 것을 먼저 시작해서 진화하는 게 정석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고유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공공성을 띤 글을 쓴다는 건 AI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즉 감상문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중에서 몇몇이 서평가로 활동하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이 책은 주로 저자가 만난 여러 사람들을 서평가로 살게끔 했던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는 꼭지들로 이뤄져 있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저자의 방법이 대중화될 수 있을진 의문이 들었다. 저자가 방송 출연을 하는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방법이 먹혔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명인이 아니라 단지 좋은 취지만 가진 일반인이었다면, 과연 한때 유명했던 코미디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0년 넘게 요리사로 일한 중년의 셰프가, KBS 방송국에서나 만날 수 있을 북한 작가가 서평가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이 저자의 권유를 받아들인 건 단지 저자의 공공성을 띤 취지 때문만이 아니라 저자가 방송계와 언론계와 출판계에서 가진 영향력이 한몫을 담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게 그 꼭지들은 평범한 대중들과는 상관이 없는 소수의 유명인이 서평을 쓰게 된 사례로 읽혔을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시작했던 '비평연대'는 응원하게 된다. 특정 유명인이 아니라 젊은 일반인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유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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