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골 기질이 쓴 '평생 단 한 번 쓸 수 있는 책'
김영하 저,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반골 기질 때문일까? 천성적인 아웃사이더 성향 때문일까?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유치한 경향을 가진 나는 지금까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 그것도 소설 한 권 (살인자의 기억법), 에세이 한 권 (여행의 이유)이었다. 그랬던 내가 잔뜩 밀려있는 책을 제쳐두고 출간된 지 석 달 채 되지 않은 그의 신간을 구입해서 먼저 읽었다. 예상 밖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나는 즐거움을 느꼈는데, 이것 역시 반골 기질, 천성적인 아웃사이더 성향 탓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한 제목인데도 진리를 담고 있어 이목을 끈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만에 읽혀버렸다. 책을 덮고 한 사람의 생을 단 두 시간 만에 읽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던 것도 잠시, 70억이 넘는 지구인 중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두 시간 집중해서 읽었다는 사실에 금세 우쭐함을 느끼며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는 사람도 아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인생에 집중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는 마치 누군가의 고백을 두 시간 동안이나 조용히 경청한 착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느꼈다. 어느덧 나는, 재미있게도, 물론 나만의 상상 속에서, 일개 독자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고해성사를 들어준 성당 신부로 격상했던 것이다.
저자가 후기에 쓴 대로, 내게도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평생 단 한 번 쓸 수 있는 책으로 읽혔다. 그리고 저자가 바로 뒷문장에 이어서 쓴 대로, 그가 그런 책을 너무 이른 나이에 쓴 게 아닌가 하고 느꼈던 두려움에 공감이 되었다. 그가 68년생이니 나와는 9년 차이밖에 나지 않고,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았는데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만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82세를 넘기고 있는 시대이고, 평생 단 한 번 쓸 수 있는 책이라면, 그것도 인생을 회고하며 쓰는 책이라면 적어도 70세는 넘기고 써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도 뜻밖의 아쉬움이 남는다. 필력만이 아닌 인생의 무게가 더해지면 책 속의 문장들 또한 더 큰 무게를 갖게 되고 책의 무게 또한 가중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 역시 스스로가 밝히듯 그가 가진 반골 기질 때문에 이런 일도 어쩌다가 툭 질러버린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것 역시 책 속에서 그가 밝힌 그의 인생의 결정들과 그에 따른 예상치 못했던 인생 항로의 연장선에 놓인 일이지 않나 싶다. 한 마디로 김영하다운 판단과 행동의 결과일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일까. 나와 비슷한 반골 성향을 가진 그가 이 책을 내고 기다린다는 '미래의 운'이 부디 그에게 가 닿길 진심으로 기원하게 된다.
#복복서가
#김영웅의책과일상
* 김영하 읽기
1. 살인자의 기억법: https://rtmodel.tistory.com/1315
2. 여행의 이유: https://rtmodel.tistory.com/1110
3. 단 한 번의 삶: https://rtmodel.tistory.com/2006
'김영웅의책과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르만 헤세 저, '황야의 늑대'를 다시 읽고 (0) | 2025.07.16 |
---|---|
김성신 저, ‘서평가 되는 법‘을 읽고 (0) | 2025.07.07 |
무카이 가즈미 저,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고 (0) | 2025.06.23 |
강유원 저, '철학 고전 강의' 1부를 읽고 (0) | 2025.06.19 |
안나 도스토옙스카야 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을 읽고 (0) | 2025.06.10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