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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 이동진

이동진 저,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 이동진 독서법'을 읽고

이동진은 영화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고 여러 매체에서도 그렇게 소개된다. 그가 남긴 짧지만 강렬한, 그래서인지 긴 여운을 남기며 수려하기까지 한 많은 명문들은 이동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다.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해서, 혹은 독창적인 비평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글쓰기를 잘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동진은 이게 가능했고, 그 재능은 그의 꾸준한 '읽고 쓰는 삶'이 맺은 열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말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이동진의 독서법에 관해서다. 굳이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제목에 나와 있는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 이동진의 독서법의 핵심 키워드는 '재미'다. 어떤 지식을 쌓기 위한 특정한 목적으로 읽는 독서도 독서이지만, 그런 독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끝나는 일에 불과하고 지속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동진의 독서법의 중요한 전제는 독서의 지속, 혹은 독서의 생활화라고 할 수 있겠다. 빈 시간에 별 망설임 없이 책을 들고 읽을 수 있는 문화를 염원하는 이동진의 바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키워드인 '재미'라는 단어를 이해했다고 해서 이 책을 닫으면 후회할 것이다. 내게 이동진은 글보다 말을 더 잘하는 인플루언서로 각인되어 있는데, 편한 구어체로 쓰인 이 책의 여러 꼭지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이동진이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곳곳에서 그의 낭중지추 같은 내공 혹은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삐져나온 송곳을 알아채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이자 이 책의 가장 적확한 독법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유사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이동진의 독서법은 아마도 책을 좋아하고 지속해서 읽어나가고 있는 무수한 독자들의 독서법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딱 한 가지에 대해서는 아래에 조금 더 풀어볼까 한다.  

이동진은 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지만 길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니, 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길을 잃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동진의 다른 표현으로 이는 각각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후자에 주목했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허무는 독서라니! 길을 잃기 위한 독서라니! 평소에 안개처럼 막연한 생각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던 것을 누군가 명료하게 정리한 문장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나는 이 부분에서 느꼈던 것 같다. 카프카의 유명한 말처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문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이 독서의 목적은 나도 모르게 게을러지고 있던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길을 잃을 용기, 잃어도 괜찮다는 용기,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용기. 독서인으로서 늘 명심해야 할 깨우침일 것이다. 

이동진은 2만 3천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다. 책 뒤엔 그가 추천하는 책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무려 800권이다. 내가 지난 8년간 읽은 책들을 다 합쳐도 겨우 천 권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데, 추천을 800권이나 할 수 있다는 건 도대체 그가 읽은 책이 몇 천권이란 말일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독서가들이 이 세상엔 많은 것을 다시 실감한다.  

이 책을 읽으며 예상 밖의 소득이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의 독서법이 있고, 글쓰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으며, 그것들을 나누고 전달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읽고 쓰고 나누는 삶은 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니, 나도 언젠간 나만의 고유한 철학과 노하우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십 년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볼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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