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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믿음
이성은 보통 한 발 느리다. 모르던 사람을 알게 될 때에도, 어떤 종교나 사상 같은 정신적인 체계를 접하고 받아들일 때에도 이성은 이미 움직여버린 마음의 뒤를 쫓고 그것을 해석한다. 나름대로의 기작을 알길 원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에 대해서.
그런데 그 해석은 자기 합리화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작은 머리로 알고 있는 여러 선험적인 지식들과 경험하고 공부한 지식들을 넘어서서 인간은 해석할 수 없다. 지식과 경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나 자신’을 본능적으로 보호하고 옹호하고 변호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것도 그런 것 같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건 무언가를 알고 이해한다는 의미도 지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다 알고 다 이해해야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믿음을 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지도 이해하지도 않고 믿는 건 맹신 혹은 광신 아닐까? 일종의 정신승리 아닐까?
이런 질문 자체가 이성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숙지할 필요가 있다. 과장하자면 이성주의와 과학주의의 열매다. 하지만 이성과 과학 역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기에 믿음과 신앙이라는 것과 이성과 과학이라는 것은 서로를 배제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위에 던진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답은 ‘증명할 수 없다’이다. 믿음이란 것 자체가 객관적일 수 없다. 누군가는 맹신으로, 광신으로, 정신승리로 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마치 나의 믿음에 절대성을 부여한 나머지 그런 시선들을 배격하고 정죄하기 위해 가시적인 행동을 취할 때, 그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의 폭력이 된다. 믿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동안 잊고 있던 찬양의 힘을 느꼈다. 알고 이해하는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힘을 느꼈다. ‘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믿음은 알고 이해하는 이성과 과학을 포함하면서도 경이라는 이성과 과학을 초월하는 그 무엇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성과 과학의 끝에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한편, 믿음은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기만 하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듯 우리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새롭게 되어지는 체험을 해야 한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서다. 깊고 풍성한 하나님에 대한 앎이 우리를 하나님을 향한 단단한 신뢰로 이끈다. 이성은 믿음과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충실한 역할도 하는 것이다.
믿음과 신앙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런 묵상을 하면서 더욱 겸허해짐을 느낀다. 누군가의 믿음과 신앙을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내 믿음과 신앙을 절대화시킬 수도 없으며 그것을 강요할 수도 없다. 믿음은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믿음을 믿음답게 만들고 지키고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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