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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만드는 일

고우리 저,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고

’사생활’이라는 단어는 묘한 매력이 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몰래 알고 싶은 마음이 거의 동시에 든다. 나의 사생활은 보호받고 싶지만, 타인의 사생활은 궁금한 이런 마음은 아마도 인간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부터 이 단어가 들어가 관심이 갔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관심 없는 척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론 관심이 가는 것. 마치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렸지만 조심스레 한 손가락씩 벌려 보게 되는 마음과 같달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관련된 내용이라, 게다가 최근에 읽었던 정아은 작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출간했던 마름모 출판사 대표의 자서전적 이야기라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 바로 구했다.

가족을 만나러 엘에이행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첫 식사가 준비될 즈음이었으니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저자의 필력이 좋았다. 술술 읽히는 문체였다. 정아은 작가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편집자가 작가만큼 혹은 작가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진정성‘이 글 전체에 녹아 있어 마치 내가 편집자라도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독자로부터 흡입력을 이끌어내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내공이라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의 일상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의외로 멋지게 다가왔다. 편집자가 쓴 다른 책을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이 책은 편집자의 일이 알고 보면 이런저런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하느라 엄청 힘든 일이랍니다, 돈도 안 되고요, 하는 뉘앙스가 강조하지 않았고, 대신 편집자라는 직업이 의례히 가져야 할 것만 같은 어떤 ’숭고함’이랄까 하는, 물론 누군가에겐 낭만으로 보일 수도 있을, 비물질적 가치를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오히려 편집자라는 직업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숭고함을 저버린 물질주의적 직업인에게서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저자는 우스갯소리로 10층 빌딩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목표도 좋게 보였다. 저자 같은 편집자(이자 작가이자 일인출판사 마름모 대표)라면 그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 흘러가는 데만 눈이 밝은 자들로부터 그 빌딩을 꼭 사수하길 바라게 되었다(물론, 먼저 지어야 하겠지만^^). 한 번도 함께 작업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적어도 그런 믿음과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책은 상품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책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다 담아내진 못한다. 책은 상품이긴 하지만 상품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이런 가치를 알고 존중하고, 나아가 먹고사니즘이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종종 부딪치더라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어 하고 또 지켜내고야 마는 편집자 혹은 출판사의 존재가 많아지면 좋겠다. 돈을 벌어주는 책이 아닌 그야말로 ‘좋은‘ 책,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책, 꼭 읽히면 좋을 책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베스트셀러’의 퇴색된 의미가 사라지고 좋은 책이 많이 팔리고 읽히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잘 되면 좋겠다. 더불어 편집자의 일상(사생활)은 곧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명제도 참이길 바란다.

#미디어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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