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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같은 문장들
- 준비 중인 원고들
가끔은 흔들리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줄 닻 같은 문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 한 번이라도 이런 걸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문장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는 것.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놓친 문장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그것들만 잘 모아놓았더라도 필요할 때 하나씩 끄집어내어 알사탕 까먹듯 야금야금 써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책을 읽을 때면 예전과 똑같이 아무런 문장도 수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실망한 적도 많을 것이다. 왜 흔들리지 않을 땐 무감각해지는 걸까. 왜 평화로운 땐 아무런 생각도 다짐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게을러지기 위해 안정과 평화를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왜 나는 안정과 평화를 얻었다고 믿을 땐 게을러지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안다. 단 한 번의 흔들림이 백 년간 흔들리지 않았던 모든 시간들을 단숨에 붕괴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닌다는 것을.
사람이란 필요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살아온 대로 움직인다. 누가 사람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이 오십이 되어서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주 가끔 이성적일 뿐 대부분의 일상에선 감정의 동물이고 관성의 노예일 뿐이다. 사람이 이성을 사용하는 순간마저도 무엇인가를 그르친 후 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할 때가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는 이성은 언제나 한 발 느리다. 뒷수습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부쳐도 반대할 마음은 없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때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흔들릴 때 붕괴되지 않도록 준비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그런 나를 붙잡아줄 문장들을 수집할 수 있을까?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마치 운동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한 번 쓰러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몸을 돌보기 시작하는 것처럼.
의외의 해결책에 도달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 그렇다고 진짜 불을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발등만 태우고 끝날 수도 있으니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마치 진짜 그런 것처럼 미리 움직이는 것. 즉 스스로를 속여서 반강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말하자면 가상훈련 같은 것이다. 이 방법이 잘 먹힌다면 그땐 필요한 문장들을 주머니에 두둑이 넣어둘 수 있지 않을까? 필요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혹시 살면서 처음으로 착한 일을 해볼 수도 있는 기회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일석이조 아닌가, 하는 바람도.
이런 막연한 생각에서 한 권의 책을 구상했고 조금씩 작업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겐 아주 오래된 것이다. 수년 전부터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가상훈련은 그럭저럭, 적어도 내겐, 작동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주워 담은 문장들, 왜 그 문장들을 수집했는지, 그리고 그 문장들이 나를 어떻게 붙잡아주었는지에 대한 글들을 모으는 중이다. 지난 십 년간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눈여겨보았던 문장들을 모으고 추스른다. 과거에 표시해 두었던 문장들을 다시 방문했을 때 아무런 스파크가 튀지 않으면 버리기도 한다. 쉰 문장 정도로 하면 좋겠다 싶다. 내 나이 쉰에 출간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서. 태어나 일 년에 한 문장씩 꾸준히 모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그런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뭐, 의미는 찾고 부여하면 되는 일이니까. 나는 왠지 쉰을 기념하고 싶은가 보다.
어떤 문장이 내 안으로 예고도 없이 훅 하니 들어오는 건 전적으로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다. 운명이라는. 그렇다. 나는 어떤 문장을 만나고 그 문장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사건을 감히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의지만으로 된 것도 아닐뿐더러 누군가가 강제로 주입시킬 수도 없는, 그러니까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그 시간 그 공간에 흐르던 어떤 기운이라고도 말할 수 없으며, 무책임하게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이럴 때 가장 그럴듯한 선택이 ‘운명’이라는 단어 아니겠는가.
운명처럼 만난 쉰 개의 문장들. 흔들리던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었던 닻 같은 문장들. 어쩌면 한두 문장쯤은 이 책이 완성되면 여러분들에게도 가 닿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각자가 자신의 닻 같은 문장들을 책 세상에서, 문장들의 세상에서, 그 오래된 이야기 세상 속에서 발굴하고 수집해 나가길 바란다. 그 문장들은 살아가면서 흔들릴 때마다 작은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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