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_’몸과 살, 그리고 세계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를 읽고
사유 이전에 지각하는 인간
내게 메를로-퐁티는 '몸의 현상학자'로 입력이 되었다. 여기에서 몸이라 함은 머리, 관념, 정신에 대조되는 감각, 지각, 행동을 뜻한다. 데카르트의 주체가 '나는 사유한다'로써 머리에 초점을 둔 관념화된 주체라면, 메를로-퐁티의 주체는 '나는 할 수 있다' 혹은 '나는 지각한다'로써 몸에 초점을 둔 육화된 주체다. 데카르트는 주체를 확립하며 근대철학을 열었지만, 머리와 몸, 혹은 정신과 신체를 완전히 독립된 실체로 보는 심신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사유하는 나'를 넘어 '지각하는 나'를 회복하면서 심신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사유 이전에 신체적인 경험이 먼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는 '나'가 세계와 접촉하고 있는 '나'라는 것을 말하며 메를로-퐁티는 사태 그 자체, 즉 현상을 중시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메를로-퐁티에게는 판단중지(에포케)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몸을 지워버린 데카르트를 극복하려 했던 메를로-퐁티를 훑어보며 상당히 설득이 되었다. 사유, 관념, 지성만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철학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몸을 가진 인간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 혹은 유령 같은 의식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메를로-퐁티 덕분에 사유하기 이전에 우리 몸이 먼저 세상을 알고 세상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몸과 세상이 없는데 어떻게 사유라는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메를로-퐁티는 세상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정신, 즉 절대정신으로 흡수하려 했던 관념론의 끝판왕 헤겔과도 정면으로 대립되는 철학자였을 것이다. 메를로-퐁티를 관념론으로 안드로메다로 갈 뻔했던 인간에게 다시 몸을 일깨우고 땅에 발을 딛게 하여 구출한 철학자라고까지 말하면 과장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인간은 관념 덩어리가 아니다. 온 우주가 거대한 정신으로 통일될 수도 없다. 인간은 피와 뼈와 살을 가진 몸으로 구성되며 그것으로 세상을 지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시작이 발라야 한다.
*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1. 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 https://rtmodel.tistory.com/2233
2. 몸과 살, 그리고 세계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 https://rtmodel.tistory.com/2240
#동녘
#김영웅의책과일상
'김영웅의책과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프레드릭 비크너 저, '통쾌한 희망사전'을 읽고 (0) | 2026.09.01 |
|---|---|
| 이기원 저, '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를 읽고 (0) | 2026.08.28 |
| 김현아 저,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읽고 (0) | 2026.08.24 |
| 제임스 엘로이 저, ‘블랙 달리아’를 읽고 (0) | 2026.08.24 |
| 호메로스 저, '오뒷세이아'를 읽고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디세이'를 보고 (0) | 2026.08.21 |
-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