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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평범”이다.
우리는 일상이라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페북이라는 온라인에서도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며 겸손을 표현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첫 만남부터 첫 소개로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스스로” 강조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평범하다고 말한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별 깊은 생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겸손을 표현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잠자고 있던 나의 삐딱함은 “스스로”라는 부분에서 빠른 속도로 활성화된다. 나에겐 그 말이 겸손으로 들리지 않고 “위장”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평범하다는 말은 비범하다는 말의 반대 표현으로써,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높은 지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사용해야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들린다 (적어도 나는 그런 문화에서 자라왔다). 이때 평범하다는 말은 주관적이기만 한 겸손의 뜻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의거한 사실 확인의 뜻이 강하다. 혼자서 상상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조차도 특별히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높여주는 표현에 황송하고도 고마워할 수 있으며, 말하는 사람조차도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을 거짓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쌍방간의 자연스러운 대화의 물꼬를 틀게 된다.
그런데 입장이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범하다고 밝히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충분히 객관적으로도 비범한 경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평범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때론 이들은 자신의 수준이 “정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또한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높이 우러러보는 것이 불편해서 (정말 불편할까? 사실은 좋지 않을까? 즐기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 살아왔던 건 아닐까?) 자신이 선수를 치느라 스스로 평범하다는 단어를 먼저 사용하며 자기 소개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런 소개에서 나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 영혼 없는 거짓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왜 거짓말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소개하냐고 대뜸 물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저도 한 아이의 아빠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또 똑같은 인간이라서 그랬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는 더이상 그 사람과 진지한 대화하기를 중단했다.
우린 같은 관심사로 만나게 된 사이였다. 동네 아저씨 만남도 아니었고 부부 상담도 아니었으며 인간이 누구이며 인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토론하는 철학적인 모임이 결코 아니었다. 그 모임은 전문적인 과학 분야를 다루는 모임이었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오직 그 주제로만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본인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뚱딴지같은 관점으로 자기 소개를, 그 사람을 띄워주는 칭찬도 없었고 그저 첫 소개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겐 그 사람이 너무 “자기 의”가 강하고,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거기다가 겸손이라는 겉치레까지 동반하며 자기를 치장하는 것을 즐기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뭐야 도대체 이 사람은? 지가 주인공인 줄 알고 선수쳐서 상석에 앉기 싫다고 먼저 말해 버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겸손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조건에 의해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저 입발린 말이 아니다. 비범한 조건을 가지고 그 조건이 필요한 모임에서까지 자기는 평범하다며 뒤로 빠져버린다면 결코 그것은 겸손이 아닐 것이다. 제발 친구들이여. 쓸데 없는 겸손은 사양하자. 거짓 겸손은 교만보다 더 거만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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