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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2011.04.08.New York

가난한선비/과학자 2011. 4. 15. 10:20

2011 4 8, New York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일찍 숙소를 나선다. 오전 9시에 Dr. Karsenty의 오피스로 가야 한다. 드디어 첫 인터뷰가 시작되는 거다.

 

생각보단 꽤 젊어 보인다. YouTube에서 보던 모습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나 대가의 풍이 느껴진다. 뭔가 다르다. 역시 최전방에서 선전하고 있는 랩의 PI답다. 프랑스 억양과 발음이 영어에 너무 많이 녹아 있어 말을 절반 정도 알아 듣는 것 조차 힘이 든다. 그래도 여러 논문의 abstract들을 읽어 놓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100% 무슨 내용인지 못 알아 들을 뻔 한 셈이다. 30분 넘게 랩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일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밀로 지켜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거 보면 정말 여긴 cutting edge에 있는 랩 같다.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publication에 관한 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더구나 랩 안에선 절대 competition이 없도록 규칙을 정해 놓았단다. 그러니 자기자신만 열심히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얻을 수 있는 것도 크다는 거다. 꽤 매력적이다.

 

랩 구성원들과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 작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는 일본인이 개인적인 관점과 실험 외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게 이야기 해준다. 그 중 안타까운 소식은 여긴 주말이 없다는 게다. 하지만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단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주중에는 보통 8~9시 정도에 일을 시작해서 밤 8시 안팎에 퇴근한단다. 토요일은 다들 조금씩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Dr. Karsenty는 일요일도 자주 나온다는 거다. 미국 동부의 분위기를 쉽게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연구 내용은 정말 최첨단을 걷고 있음이 틀림없다. Blue Ocean인 거다. 경쟁자도 없을뿐더러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앞길도 자연스레 보장되는 거다. 하지만 내용의 절반 이상이 내가 지금까지 가장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인 Energy metabolism. , 이 아이러니! Glucose tolerance, Insulin resistance, 등등 쉽게 와 닿지 않는 데이터들을 모두들 내게 보여주며 각각 30분 이상씩 설명해 준다. 공부하면 나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두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내가 그 동안 해온 경력이 거의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라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도 여긴 Big guy 랩이잖아. 나만 열심히 하면 Cell에 논문도 쉽게 낼 수 있잖아. 더군다나 랩 안에선 경쟁도 없다는데, 나의 앞길의 보장을 위해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 수많은 생각이 오간다.

 

지난 달에 Cell first author로 논문을 낸 Oury가 내게 점심 식사를 사주면서 이런저런 많은 실험 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게 Housing facility를 설명해 주면서 오늘 인터뷰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Celia에게 Housing facility를 신청하라는 거다. 그래서 아직 Dr. Karsenty가 날 고용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이냐 했더니, 하는 말, “I know him. Take it easy…..” 자기가 Dr. Karsenty의 반응을 봤더니 날 뽑을 게 확실하단다. 그래서 Housing facility를 신청해도 되냐고 Dr. Karsenty에게 물으면 그렇게 하라고 선뜻 허락할 거라는 거다. 놀랍다. 그럼 정말 내가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거란 말인가?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Dr. Karsenty와 마무리 대화를 나누는 중 갑자기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인터뷰를 하러 가냐고 묻는다. 순간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다음주 월요일 날 Harvard에서 인터뷰가 있다고. 그런데 별로 반응이 좋지 않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음주에 나와 같은 포스닥 후보자가 한 명 더 인터뷰하러 올 거라는 거다. 그러니 Harvard에서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자기에게 먼저 이메일을 달라고 한다. 보통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일주일 정도 후에 이메일로 고용할 건지 말건 지에 대한 결정사항이 당사자에게 통보되는 게 정석인데 이건 예상 밖의 일이다.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 괜히 사실대로 말했나 싶다. Oury가 말했던 거와는 다르다. . 여기가 아닌가?

 

여기 뉴욕 맨하탄은 현웅이가 자라는 데엔 정말 가장 나쁜 환경이긴 하다. 위험하고 삭막하고 지저분하다. 만약 내가 싱글이라면 충분히 여기에 와서 몇 년 정도 열심히 일해서 좋은 경력을 쌓는 게 베스트 옵션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하나님께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도 그걸 원하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선 여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난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맘에서 쉽게 여기 Columbia Medical Center를 놓을 수가 없다. 화려한 경력이 앞길을 보장해 줄 것 같은 달콤한 유혹이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누가 봐도 확실하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여긴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날 시험하시려고 첫 번째 인터뷰 장소를 여기로 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께선 내가 성령인도를 받길 가장 원하신다. 내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가족과, 더 나아가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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