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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2017 Family Vacation. Day 3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52

2017년 6월 28일 수요일.


Grand Canyon & Bryce Canyon.


아들 녀석만 빼고 기적처럼 새벽 5시가 되기 전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주위가 밝다. 곧 해가 뜰 것이다. 씻을 겨를도 없다. 가지고 온 겨울 파카를 걸치고 곧장 차에 오른다. 헝클어진 머리도 상관없다. 해 뜨는 장관을 봐야만 한다! 침낭에 쏙 들어가 잠든 아들 녀석을 그대로 버쩍 들어 차에 싣는다. 출발한다. 선라이즈,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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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정확히 5분만에 저 멀리서 붉고 눈부신 해가 솟아 오른다. 아.. 얼마나 완벽한 타이밍이었는지! 미리 준비한 동영상으로 순간을 담는다. 그런데 셀폰에 비춰진 모두의 얼굴이 초췌하다. 그러나 거기엔 만족스러움이 숨어 있다. 그렇다. 우린 그랜드 캐년에서 선라이즈를 실제로 목격한 증인 목록에 추가된 것이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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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을 좀 더 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예정대로 오전 9시경 브라이스 캐년으로 출발하기로 한다. 5시간 정도 운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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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역시 장관이다.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가끔은 내가 지금 지구 위에서 운전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그냥 차로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장소가 많다. 그 중 몇 군데는 차를 멈추고 내려 구경하고 사진을 찍기로 한다. 그러니 운전 또한 덩달아 즐겁다. 여행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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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달 전 초기 계획에는 브라이스 캐년이 빠져 있었다. 대신 이철규 박사님의 추천으로 엔텔롭 캐년이 계획 속에 있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거기는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하고, 입장하는 것도 다른 캐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 신비로운 빛과 암석의 조화를 목격하기 위해서는 정오 즈음에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 팁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미 그 시간대는 만석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랜드 캐년이나 자이언 캐년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는데, 김재수 교수님께서 강력하게 브라이스 캐년을 추천해 주셔서 결국 계획 속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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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예약한 Airbnb가 브라이스 캐년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미리 들려서 열쇠도 받고 짐도 풀고 좀 쉬다가 가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벌써 오후 2시다. 브라이스 캐년까진 아직 1시간 남짓이 남았다.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쉰다는 건 아무래도 나에겐 오늘 여행을 접겠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에 조금 힘들더라도 곧장 브라이스 캐년으로 향하기로 한다. 숙소가 있는 Kanab에서 서브웨이에 들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곧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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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과는 다른 느낌이다. 김재수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이유를 알 듯하다. 여기를 계획에서 빼버렸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울긋불긋하며 기괴하게 생긴 암석들이 즐비하다. 그랜드 캐년이 “저 멀리 있어 넘볼 수 없는 그대”였다면, 브라이스 캐년은 한 걸음 성큼 다가와 있다. 그리고 광대함만 가진 것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면모도 숨어 있다. 기괴함과 조화로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가까이서. 아, 인간의 눈으로 처음 보는 절경을 맞이하는 기쁨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그것도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거라면, 아마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진 않겠지! 마침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햇살이 암석들 사이로 비치는 광경이 마치 그림 한 폭에 우리 모두가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초자연적인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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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코스도 있는 것 같지만, 차로만 다니면서 몇 군데 포인트에 내려 구경하고 사진 찍는 식으로 관광을 이어간다. 해가 지는 모습까지 보기로 했다. 마침 선셋 포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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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포인트에서는 아래로 펼쳐진 연한 오렌지색의, 마치 누군가가 조각해 놓은 듯한, 기괴암석들이 아름다운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다닌다. 트래킹 코스가 그 사이사이로 나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꼭 여기를 걸을 테다. 다음에는 그랜드 캐년이 아닌 브라이스 캐년에서 캠핑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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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bnb를 처음 이용해 봤는데, 완전 대만족이다. 세금까지 모두 합쳐서 200달러였는데, 방이 3개나 되는 커다란 2층 집이다. 요리도 마음껏 할 수 있고 목욕하고 편안히 침대에서 잘 수도 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좀 더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도 세웠을 것이다. 아, 정말 잠만 자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곳이다. 이틀 밤 텐트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호화로운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있자니 모두가 흐뭇해 한다. 갑자기 신분 상승한듯한 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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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군데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70세의 할아버지에게나 8살의 어린 나이에게는 분명 타이트한 스케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모두 함께 간다. 느리지만,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손을 잡고 우린 함께 가고 있다. 이번 여행의 참된 의미는 바로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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