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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평범한'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3. 15. 01:39

'평범한' 삶.


장 그르니에를 읽는다는 건 일상의 잔잔하고도 깊은 양면성을 인지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통찰한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른다. 일상을 잃어버린 자들에겐 우리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기적일 것이다. 이건 단지 현대인들의 바쁘게 쫓기는 삶에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옥과도 같은 삶을 평생 살아가는 우리 주위의 많은 이들에겐, 우리들이 너무나도 경솔하게 정의해버린 그 '평범한’ 일상이 곧 천국과도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런 기적과도 같은 평범한 일상을 지겹다는 둥, 탈출하고 싶다는 둥 하면서 함부로 소비해 버린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 삶의 순간은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여기기도 하며, 우린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잉여물로 정죄해 버리곤 한다. 누군가에겐 일용할 양식이 될 수도 있을 음식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평범한’ 일상은 허송세월의 완곡한 표현이 아니다. 짜투리 시간도 아닐 뿐더러, 의미 없이 텅 비어있지도 않다. 오히려 우리의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일상에 녹아 있다. 결코 희생되어야 할 제물이 아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장 그르니에를 읽으면서 탁상공론이라든지 쓸데 없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일상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더 큰 상처를 입어본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난 인간의 한계를 보기도 한다.)


장 그르니에를 읽을 땐 이런 것들이 필요한 듯 싶다. 그를 공감하며 그의 생각의 흐름에 함께 해보는 것. 무심코 지나칠 일상의 파편들을 곱씹어보며 간과했던 의미를 재발견해보는 것. 아, 헤세에 이어 장 그르니에도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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