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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임.
나이가 들며 점점 머리카락이 꼬인다. 인생이 꼬이는 만큼 머리카락이 꼬이는 걸까? 머리카락이 꼬이는 만큼 인생이 꼬이는 걸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내게 있어 둘은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시기와 진도가 놀랍도록 같기 때문이다.
앞머리보단 뒷머리가 꼬인 것은 내가 볼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 꼬였다는 뜻이라고 해석해본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내가 빗질하고 다듬을 수 있는 앞부분만 그나마 좋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머리와 뒷머리가 모두 다 내 머리이고 둘은 분리할 수는 없는 법. 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은 꼬인 인생일 뿐이고, 그나마 내 앞의 사람들이 가끔 뒤돌아 볼 때만이 내 인생이 번지르하게 반듯한 것처럼 보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앞에 간 사람들은 좀처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내 반듯한 앞머리는 사진이나 거울에 비친 나의 허상일 뿐, 나의 전체 모습을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전체를 보려면 앞과 뒤와 옆까지 모두 봐야 한다. 그것도 어떤 한 순간이 아닌 여러 상황에서. 물론 이건 불가능하다. 우린 타인의 전체를 결코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한계를 지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나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바란다. 나의 앞뒤의 다른 모습에 편향되지 않고, 내 앞머리와 뒷머리의 꼬인 정도를 비교하지 않으며, 꼬인 인생이 평범한 인생임을 알고 자신의 꼬인 부분을 공유하며 공감해주는 사람이 존재하기를. 배제와 혐오, 차별과 정죄 없이 한 인간으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존재하여 내 옆에 있어주기를. 그리고 참으로 가증스럽게도 나는 그 누구의 사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으려 하며 각인된 나의 기준에 맞춰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려 한다.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내 앞에 나타나도 그 사람의 가치를 따진다. 환대도 마찬가지다. 환대를 해줘야 할지 말지, 내 유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따진다.
머리카락만큼 인생이 꼬이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두 가지 자아가 상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완전히 받아들여지려는 나, 그리고 엄격한 재판관이 되어 남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나. 아, 미용실에 가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면 내 인생이 펴질까? 내 안의 두 자아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일될까?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백성이 실생활에서 될 수 있을까? 신학 지식이 과연 도움이 될까? 좋은 사람들의 조언과 격려가 도움이 될까? 결국 나 홀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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