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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효율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8. 11. 05:37

*다이어트 3주차. 거울에 비친 내 미련한 배때기를 쳐다보며 든 단상*


효율.


비효율적이어서 아깝고, 그래서 사라지거나 제거되길 원하는 시간. 이 시간의 다른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여유’이다. 


언젠가부터 우린 효율을 따졌다. 같은 거리를 더 짧은 시간에 주파하길 원한다. 적은 힘을 들여서 많은 열매를 얻길 원한다. 시간의 단축, 노동의 절감, 이 두 가지가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고려하는 효율이다. 


효율적이지 않으면 바보처럼 취급받기 쉽고, 자기보다 더 효율적인 사람을 만날 땐 경탄하기 일쑤다. 그러나 우린 효율적인 방법의 개발과 발견에 열광했을 뿐, 왜 효율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을 잊어버린 것 같다.


많은 경우 돈을 쓰면서 애써 얻어낸 그 남는 시간과 힘을 우린 과연 어디에다 쓰고 있을까? 효율이 효율로 끝나기 위해선 어느 특정한 순간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시간을 단축하면, 우린 그 남는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안다. 대부분 맞다. 그러나 그 많은 것들이 과연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린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 일을 가능한한 덜 하고 싶어하는 존재가 인간 아닌가? 효율은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많은 일을 제한된 시간 안에 처리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되지만), 재미있게도 그리 효율적일 필요가 없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뜻하지 않게 게으름을 불러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차를 타고 30분만에 갔다고 하자. 그 남는 30분을 우린 어떻게 쓰고 있는가? 물론 그 뒤에 계획된 일을 30분 당겨서 미리 처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루를 30분 더 일찍 끝낼 수도 있고, 일이 끝난 뒤 좀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주 바람직한 경우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경우 우린 30분 앞섰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보상하길 원한다. 그래서 남긴 그 30분 간 보통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해야만 할 일들을 지연시키거나 놓쳐버리는 일까지도 왕왕 생겨난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2차적인 효과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경우 과연 우린 우리가 애써 벌어낸 그 30분으로부터 이득을 본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역까지 걸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 더운 날씨엔 불쾌지수가 확 올라가기도 한다. 원치 않더라도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반면, 차를 타고 가면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을 뿐더러 에너지 소비 또한 줄일 수 있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땀 하나 흘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자, 이때 아낄 수 있었던 에너지를 과연 우린 어디다 쓰고 있을까? 의도하진 않았지만, 일단 편리함이 가져다준 효과로 우린 땀을 흘릴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쾌적한 기분을 보상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점점 더 과체중을 넘어 비만을 향하고 있다. 주차를 하고 건물 안에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도 더워 죽겠다며 들어가서 곧바로 소다를 들이킨다. 흘린 땀도 없이 설탕을 과다복용하는 셈이다. 


물론 이 예는 극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편리함이 시간의 단축과 노동의 절감을 가져다준 대신 게으름과 비만이라는 잉여물까지도 덤으로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비만이 결국은 가져오는 성인병의 위험을 수치로 확인하게될 무렵, 다시 그 체중을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시간을 역행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비효율성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불편하지만, 시간이 좀 더 들지만,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그 시간을 나그네의 입장에서 바라보듯 여유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것은 지혜가 아닐까 싶다. 지혜는 빨리빨리에 있지 않다고 본다. 또한 지혜는 그리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가장 큰 효율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삶이라는 전체를 아우를 때 순간 기울기값은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비효율적이게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난 그런 삶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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