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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혜자.
잠든 자녀의 모습에서 벅차 오르는 행복과 함께 한편으론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 내리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우린 연습 없이 부모가 되고, 연습 없이 자녀가 된다. 그래서 서툴 수밖에 없고, 첫 아이의 경우,참 겁도 많이 난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아픔을 느끼게 되고, 아이가 함박웃음으로 서툰 부모짓에 보답해올 때면 그 어떤 성공에서보다도 더 큰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낯설고 서툰 시간들에 익숙해져 가면서, 마치 타인에게 공개했던 사진에서처럼 부모 된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만이 남아 행복한 기억으로 저장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우린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아내며,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가장 추하고 못난 모습까지도 여과 없이 자녀들 앞에서 터뜨려버린다. 이는 바로 천사처럼 잠든 자녀의 모습에서 이중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다. 목숨이라도 바쳐 구하고픈 어린 생명을 향한 무한한 헌신과 사랑의 마음이 천연덕스럽게도 수치와 죄책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 고개조차 들기 힘들어하는 마음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분명 우리와 늘 함께하며 살아있는 레코더이자 거울임에 틀림없다.
2년 전 사진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순간 잠이 확 깰 정도로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바로 아들의 성장이다. 키가 자라고 아기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이 당연한 사실 앞에서 한 동안 숙연해졌던 이유는 아마도 공개되지 않고 가슴 한 켠에 품고 있던 아픈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과연 좋은 아빠였던가. 나는 과연 지금 좋은 아빠인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설명할 때 많은 경우 부모의 사랑을 빗댄다. 그러나 난 부모의 사랑보다도 아이의 사랑이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이 가식적이고 못나고 때묻은, 이중적이고 삼중적이어서 일관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적도 많았던,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의 나를 아이는 사랑해준다. 무조건적으로 말이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로부터도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우울감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일상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다. 이 조그만 녀석이 2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이다. 아아, 이것이야말로 은혜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이제 우린 서로 어느 정도 연습도 했다. 그래서 더욱 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본다. 서로의 못난 모습을 알고 경험도 해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깊숙한 그 무엇도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때다. 지금. 바로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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