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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오만과 편견의 해체.
제인 오스틴 저, ‘오만과 편견’을 읽고.
오만함은 숨겨진 나르시시즘의 발현이자, 타자에게 비쳐진 나르시시즘의 거울상이다. 인간의 자신감은 자주 도도함으로, 도도함은 오만함으로 진화한다.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의 표출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감 상실을 거쳐 자기비하로 치닫는 경우 역시 또 다른 자기파멸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신감을 가지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겸손한 자신감이 오랫동안 디디고 서있을 자리는 너무나도 좁다. 게다가 그 좁은 길 양쪽으론 파멸의 강이 버젓이 흐른다. 우린 과연 살면서 발을 헛디디지 않고, 파멸의 강에 익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대접받아왔고, 대접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성인의 경우, 게다가 사교성까지 부족할 경우, 타인으로부터 오만함의 명예를 입을 가능성은 현저히 높아진다. 그러나 이때, 오만과는 다른 어떤 한 힘이 위력을 떨칠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편견이다.
편견에게 있어 오만함만큼 적당한 파트너는 없다. 결국 오해로 판정될 주관적 선입견은 차후에 발생하는 많은 증거들의 선택과 조작, 인멸을 유도하며, 나아가 편견은 자신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또 적극 수호하게끔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사람이 오만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될 경우, 그 편견의 눈에는 오만함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이 보이게 된다. 또한 오만의 눈에도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편견의 존재가 결코 탐탁지 않다. 오만과 편견 사이에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른다. 그 강의 존재는 서로를 더욱 증폭시켜 궁극적인 자폭을 유도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뜻밖의 사건은 발생하고야 말고, 그 사건은 삶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온다. 인생이 신비인 이유는 어쩌면 예상 밖의 일들이 만들어내는 향연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 오만함의 역을 맡았던 '다아시'와 편견을 맡았던 '엘리자베스' 사이에도 처음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깊고 넓은 강이 흘렀다. 그러나 그 어두운 강에도 서광이 찾아왔다. 엘리자베스를 가득 채웠던 다아시를 향한 혐오는 결국 오해로 인한 편견이었음이 밝혀지고,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베넷 가 모두에게 오해되었던 다아시의 오만함의 실체는 겸손한 자신감과 깊은 이해심을 동반한 자상하고 사려 깊은 배려심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둘 사이엔 진정한 사랑이 흘러 들어 결국 둘은 하나가 된다.
이 책은 오만과 편견의 악한 파트너십이 점차 상쇄되어가는 아름답고 놀라운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우아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많은 남성 작가들이 쓴 내러티브와는 또 다른 신선한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책을 많은 남성 독자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누구에게라도 존재할 오만과 편견이 깨어지고 그 자리에 진정한 사랑이 잦아들길 바란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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