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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당당함의 이면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0. 27. 06:45

당당함의 이면.


한인들이 미국에서 흔히 겪는 문화적 이질감 중 하나는 ‘당당함’과 ‘겸손함’의 간극에서 기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라고들 확대 해석하는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라고 좁혀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내가 만난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 백인과 달랐으며, 마찬가지로 내가 만난 많은 동양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모든 미국인들이 같지도 않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차이는 이것이다. 너무 겸손한 척하면 오히려 진짜 무능력한 줄 안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좀 들이대야 소신있고 참여적이며 활동적인 줄 안다는 것이다. 미국 생활한 지 7년을 넘기며 이런 차이에 대해 직접 경험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대체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이면엔 차별과 배제라는 키워드가 숨어있음을 난 알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표면적 차이라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온 두 인간이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받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미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업신여기는 상황, 게다가 그 다른 한 쪽은 알아서 먼저 밑으로 기는 상황에선 그 차이라는 것이 수박 겉핥기식의 관찰에 불과하다.


어제 저녁 집에서 자전거를 타며 땀흘리는 와중에 봤던 배덕만 교수의 강의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우파의 기원과 그 실체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거기 한복판엔 미국이라는 단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비로소 그동안 산재되었어있던 많은 관찰과 지식의 파편들이 하나로 모아지는듯한 느낌이었다. 눈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어렸을 적부터 ‘서양’하면 곧 ‘미국’이었다. 한글 자막이 들어간 미국 영화를 보며 자랐다. 그들의 여유, 그들의 일상, 그들의 문화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경하기도 했던 것 같다. 미국은 어렸던 내게 언제나 저만치 앞서있는 나라였다. 미국은 내게 미래였던 것이다. 늘 우월하고 힘이 있으며 성공을 보장해줄 꿈의 장소로 암묵적으로 인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금발에다가 파란 눈의 백인, 덩치도 크고 이목구비도 또렷할 뿐더러 자신있는 말투로 상대방을 쉽게 압도하는 미국 시민들을 직접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머리가 커버린 지금은 그리 큰 여파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여파를 부인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내게 미국과 미국 사람이라는 의미는 컸던 것이다.


미국인의 여유가 선진국민의 훌륭한 인격인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난 많은 경우 그들이 동일한 인격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실체를 알게 되었고, 인간의 본질을 다시금 고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타국에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과 나의 사명에 대해서도.


부와 명예를 거머쥔 미국인들이 자기계발로써 노력과 열정 등을 강조하는 걸 볼 때마다 언젠가부터 내겐 그 말들이 굴절되어 들린다. 대체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 ‘저들은 과연 어렸을 적에 차별이나 배제, 혐오 등을 느껴봤을까? 노력과 열정이 커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직접 체험해본 적이 있을까?’


그들과 얘기하다가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건가? 상처인가? 열등감인가? 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다. 분명 사실인 것 같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느낀 적도 없을 정도로 내 말과 생각이 외계적인 생각과 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런 기분. 심리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열등한 한 인간의 감정표출 정도로 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은 언제 겪어도 참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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