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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11월 20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1. 22. 01:31


11월 20일.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스르륵 책장이 넘어간다. 세월이 빠르다.


11월이 좋은 이유는 그것이 12월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 지나면 또 한 주가 시작되듯 12월이 지나면 한 해가 시작되기에, 토요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11월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카드 하나가 아직 손 안에 남아있을 때의 묘한 안정감이랄까.


남은 마지막 카드로 전체의 끝을 예감하는 것처럼 11월은 그렇게 내게 성찰과 반성, 그리고 남아있는 희망을 다시금 부여잡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준다.


올해도 과학자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었다. 예전과는 달리 마음에 착 담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살아왔다. 언제까지 이런 타이틀과 포지션으로 일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이젠 비록 열정이 식어버린 차가운 실력과 지식만 남아있는 직업이지만, 성실함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과학자로서 좋은 결과를 위하는 것보단 인간으로서 그 과정을 어떻게 살아내는지가 내겐 더 중요했다. 삶이 예배라며 일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내자고 하면서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다면, 그건 모순일 것이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계절, 그러나 시간은 감사하게도 똑같이 24시간이다. 마치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잃은 건 없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해도해도 티 하나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하며 이런저런 투덜거림과 소소한 웃음 속에서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게 11월이 간다. 한 해가 간다. 마지막 카드 한 장을 곧 꺼내들 때가 온다. 그 순간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이, 조금은 더 만족스러운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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