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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선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2. 11. 05:01

선택.


한때 우리가 경솔하게 꿈이라고도 불렀던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때, 우린 한없이 깊은 수렁에 빠진다.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클수록 상실감은 큰 법이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된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시기가 있다. 자신이 선택된 자라고 믿어온 시간이 긴 만큼, 그리고 그 정도가 강했던 만큼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합리화를 해왔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잃었던가.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다 잃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린 과연 무덤덤할 수 있을까.


당신은 선택된 자인가, 자신이 선택된 자라고 여기는 자인가?


그러나 이를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우린 선택된 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그 이전에 또 물어야 할 건, "'선택된 자'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일 것이다.


흔한 예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선택된 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선택 받지 못한 자가 된단 말인가. 이때 선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1명만 뽑는 채용심사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2등은 1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 받지 못한 자일까, 아니면 100명에서 시작했던 예선에서 여러 차례 살아남았기 때문에 선택된 자라고 해야 할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반쯤 선택된 자라고 치고 넘어갈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은 선택 받은 것이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선택 받지 못한 것이 되는가. 선천적인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선택 받지 못한 것의 증거라도 되는가. 수억 개의 정자에서 가장 빠르거나 강한 정자였던 태곳적 기억은 그럼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선택된 자였다가 나중에 선택 받지 못한 자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택이란 임의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선택이란 누가 공인해주는 것인가. 어쩌면 우린 모두 선택된 자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된 자라고 여기는 자가 아닐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속고 속으며 남까지도 속이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모든 사고의 과정은 이미 기운 세상에서 비롯된 각인된 상처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기운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운 방식대로 노오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점점 더 기울다가 결국은 전복 당하겠지만 상관없다. 그때까지만이라도 피라미드의 한 단계 위로 가서 자신이 선택된 자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세상은 비극일 뿐이다.


경쟁이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굳이 선택된 자일 필요가 없는 세상. 선택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세상. 허영과 권력욕과 자기애와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혐오와 배제로 똘똘 뭉친 자가 아닌, 헌신하고 희생하고 거기에서 진정성 있는 자부심과 만족을 느끼고 기꺼이 남을 위해 살 때 함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되고 싶다. 나는 선택된 자이고 싶지도 않고, 선택 받는 것의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선택은 개나 줘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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