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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천국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2. 11. 09:31


천국.


어쩌다보니 참여하게 된 소그룹 모임이 세 개나 된다. 모두 한 달에 한 번 모이지만, 모임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 하나는 각자 다양한 인생의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을 함께 배우며 함께 작업하는 모임이다.


공통점도 있다. 바로 책이다. 배움이다. 나눔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신뢰를 쌓아간다. 혼자 읽고 느끼며 작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독서 방법이 비로소 만개하여 풍성하고 다채롭고 짙은 향으로 진동할 순간이 나는 함께 모여 나누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나눌 때 서로의 다름은 차이가 아닌 풍성함의 구성요소가 되며 서로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주는 도우미가 된다. 자기로 가득했던 관점은 어느새 느슨해지고 오만할 수 있었던 당당함은 겸손함의 옷을 입고 존중과 배려로 진화한다. 책이 하나의 꽃이라면 독서는 꽃 향기를 맡는 것이고 나눔은 정원을 거니는 것이다.


나눔은 배움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도 배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배움은 어떤 분야에서의 지식 습득과 누적에 그치는 정도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배움이 아니라 단순히 지식습득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한다. 지식습득은 배움에 포함은 되겠지만, 지식습득이 배움 그 자체는 아니다. 덧붙여,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의 지식습득은 난 배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움은 겸손과 존중, 배려, 사랑과 흐름을 함께 하는 것이지, 결코 승리, 쟁취, 독식과 결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 묻은 배움은 배움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에는 나눔이 끼어들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향하여 사용되어질 피라미드의 벽돌일 뿐이다. 배움은 결코 외롭지 않다.


함께 배우는 장이 되고, 서로의 것을 나누면서 더욱 풍성해지는 모임. 남이 쉬거나 잘 때 몰래 혼자서 열심히 깊은 우물을 파던, 외롭고 처절했던 지식습득의 세계에서도 이룰 수 없었던 온전함을 난 이런 곳을 통해 얻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했던 그 수많은 조언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내가 승리를 독차지할 수 있는 그 시스템에서 내가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올렸던 그 기도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누군가를 밟고 일어섰을 때 내가 기쁨과 감사로 드린 기도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거부할 수 없는 경쟁사회에 살면서 누군가는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순 없겠지만, 결승선에 가면 난 반드시 거기엔 1등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다채롭게 얼마나 풍성하게 얼마나 헌신하며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섬기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상도 있으리라 믿는다. 결승 테잎이 존재하는 이 체제 속에서 결승 테잎을 제거할 순 없겠지만, 거기에는 1등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상들이 존재하여, 본인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모두 다 상을 받을 수 있는 잔치와도 같은 곳, 어쩌면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사진은 Huntington Library에서 어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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