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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받기 원한다는 말은 자칫 끔찍할 정도로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본인은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대로 할 테니, 자신을 사랑해 줄 상대방은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여 주고 좋아해 주어야 한다는 폭력의 논리로 오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상태는 정지된 상태도 죽은 상태도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하며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인간 사이에서 사랑 받기 위해선 그럴만한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랑’이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캇 펙에 따르면,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참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적인 행동이 아니기에 아무런 노력도 필요없으며, 비현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히는 거라 결국은 모두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은 참사랑의 일환이 될 수는 있으나 사랑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 큰 것을 (이를테면 자신의 노력과 능력 밖의 성취물) 요구 당해 보고 실패해 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하소연 중 하나가 바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받기 원한다’라는 것인데, 사실 이 말엔 다분히 화자의 상처에서 기인한 지침 (tiredness)과 실망 등이 진하게 배여있다. 어떤 것을 강렬히 원하다가 뜻하던 대로 되지 않을 때 오히려 정반대의 극으로 도약하듯 이동하는 반동적인 행위일 뿐일 때가 많은 것이다. 연민의 정으로 그런 상처를 들어주고 그 아픔을 공감해 주며 보듬어 주어야 하겠지만, 참사랑을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은 그 상처받은 상황과 무관하게 여전히 존재한다.
폭풍처럼 왔다 가버리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지나고나면, 황홀했던 휴가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듯, 거품이 빠지고 현실을 직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치 사랑도 끝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때가 제대로 된 사랑을 시작할 때일 가능성이 높다. 참사랑은 휴가와도 같은 일시적 고립에 있지 않고, 늘 우리와 함께 숨쉬는 일상에 있다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상은 멈춰있는 것 같으나 멈춰있지 않고 똑같은 것 같으나 똑같지 않다. ‘있는 모습 그대로’란 이런 일상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린 사실 단 한 번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는다. 늘 새로움의 연속이다. 어쩌면 일상이 어떤 규격화된 패턴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쉬지않고 이어지는 변화의 연속성일지도 모른다.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눈에는 일상이 쓰레기로, 벗어나고픈 지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눈에는 변화의 연속선 상에 놓인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야할 시공간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니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일상의 본질을 가늠하며 작은 불씨 하나 붙들고 꺼뜨리지 않는 심정으로 소박한 소망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랑법이 아닐까.
*사진은 지난 주 일요일 Huntington library 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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