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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삶이 여행이라면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될 수 있다. 단, 여행을 즐기되 여행이 우릴 지나치며 남기는 흔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것들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종합하고 사유하여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 작가에게는 뒤따른다. 뜻밖의 커다란 사건을 만난 경험을 풀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작가는 세밀한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관찰과 실험, 분석과 추론과 종합이 직업인 과학자로서의 일상은 작가의 그것과 맞닿은 면이 많다.
책이 쓰여지고 읽히기 시작하면 책은 더 이상 저자의 사유물이 아닌 독자의 것이듯,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번역하여 주관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글을 써내는 것도 자연의 것이 아닌 오로지 작가의 전유물이 된다. 결국 모든 글은 해석이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하나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한 글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참 아이러니하다. 똑같은 장면을 본 목격자도 아니고, 똑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는데도, 유독 어떤 글은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우린 개인이 아닌 인간이라는 상위개념이 부여해주는 내재적인 공통된 속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 인간의 공통되고 고유한 속성을 현장에서 개인의 눈으로 관찰하여 풀어내는 자가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작가의 모습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여행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것들은, 기차가 건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자연을 스쳐 지나가듯, 시간의 늪으로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에서 느꼈던 것들을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주로 사진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받은 100을 우리가 찍었던 사진 몇 장에 구겨넣어 약 5나 10으로 우리의 오감을 풍성하게 자극했던 추억을 제한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이다.
사진에 찍힌 사람보단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상황을 곧잘 더 세세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이런 능동적인 입장에 서면, 그때의 상황, 그때의 냄새와 느낌 등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살아나 순간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전율과 함께 그 추억을 보다 풍성히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사진에 찍히는 입장이 아닌 사진을 찍는 입장에 서보면 어떨까? 반짝이며 바람처럼 우리를 지나쳐가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으려고 애쓰듯 일상을 살아낸다면 어떨까?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좀 더 다정하고 세밀한, 우리도 몰랐던 내면에서 움틀거리던 작가의 눈이 탁 하고 터져나오지 않을까?
타인이 스쳐지나간, 혹은 타인을 스쳐지나간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담아 하나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글을 쓰고 싶다.
*사진은 지난 일요일 Huntington library 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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