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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2. 13. 06:14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강렬하게 압도되는 느낌으로 다가온 사람과의 만남을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사랑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한 순간이며 그래서 쉬이 지나가버린다. 순식간에 모든 마음과 생각을 충만하게 만들었던 순간이기에, 게다가 일상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기에, 우린 그때를 동경하기도 하며 가끔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다. 모두가 달랐지만, 일부의 사람들에서 확인되는 무시 못할 공통점 중 하나는 ‘신비적이거나 환상적인 체험’에 그들이 매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하나님을 만난 사건이 흔히 말하는 ‘신내림’이라는 신비적인 현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역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 30년이 넘는 내 신앙생활을 돌이켜보면,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느낌을 느껴본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이제 그런 순간들을 굳이 하나님이 날 만나주셨던 객관적인 사건으로 해석해야만 할 이유를 잘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게 우기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그 사건을 그렇게 믿을 순 있겠지만, 남들에게 그 사건을 소개할 때 자신의 개인사를 넘어 마치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거나 그 사건을 일반화시켜 남들을 재단하려 한다면 그건 부당한 일이며 일종의 폭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언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냐 하는 문제는 해석의 문제로 믿음의 문제로 남는다.


불 같이 다가왔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지나면, 비로소 우린 여전히 혼자라는 현실과 똑같은 일상에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사랑의 느낌은 다른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자기 안에 갇힌 채 거룩한 합리화와 자기 위안을 일삼는 이기적인 나르시시즘이 고개를 쳐든다. 사랑의 느낌을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은 언제나 일상에서 발을 띄운 채 환상을 갈구한다. 자신은 사랑을 간절히 원하지만 세상이 너무 차가워 사랑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 엑스터시를 늘 갈망한다. 그들에겐 그 갈망이 유일한 소망이다.


하나님을 만난 것과 하나님을 만났다는 느낌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난 사랑의 느낌을 사랑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평행현상을 목도한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자신을 제압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태로 만드는 존재다. 소통이란 없다. 열매도 없다. 성장과 성숙도 없다. 거기엔 공포와 두려움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때를 떠올리며 퇴행적인 삶에 천착한다. 자신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웃기지도 않은 거룩한 자부심을 가지고서 말이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의 고백에 담긴 사건 속에서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만났던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내가 감찰자가 되어 그들의 고백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들의 삶을 추적하며 열매를 맺는지 여부를 확인하고픈 마음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을 만났다는 자신의 믿음과 해석을 몽둥이로 삼아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지는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보나마나 보기좋게 믿음 없는 자로 낙인이 찍히겠지만 말이다.


*사진은 저번 주 일요일, Huntington library 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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