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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자기 딴엔 뭔가 더 깨닫고 더 큰 사람이 된 것마냥, 마치 초월이라도 한 것마냥 행세를 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낮아졌대나 겸손해졌대나 말하는 사람을 본다. ‘나 지금 겸손해진 걸 자랑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 하는 꼴과 같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고 독주하기에 여념이 없다. 인정받기에도 여념이 없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겸손은 개뿔. 그 사람에게는 그 낮아지는 과정도 교만의 연장선일 뿐이다. 더 높아지기 위해 낮아짐을 일부러 감당해내는 저 아이러니한 자기애. 악함의 상석을 차지하려는 더 악함. 인간이 모든 생명체 중 유닉한 이유는 이런 악함도 한 몫을 단단히 하는 게다.
행위도 중요하다. 행위가 사람에게 수정을 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사람이다. 행위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의 본성. 소위 무의식과 잠재의식, 혹은 영적인 영역이라고도 부르는 그것. 지속적인 치유를 받지 않으면 결코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강력한 힘. 죄와 악의 힘. 거기엔 자기애, 즉 교만이 있다.
둔갑의 귀재인 교만은 약자에게 가서는 열등감이 되고, 강자에게 가서는 오만함으로 발현된다. 열등감에 쪄든 사람이나 오만방자하게 구는 사람이나 겉모습은 정반대일지 몰라도 매한가지일 수 있단 말이다. 뛰어봤자 벼룩, 그래봤자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열등감이나 오만함으로 사람의 행태를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타인이 아닌 자신이 자신의 행동의 패턴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여 보다 심층적인 단계로까지 들어가 교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남을 판단하고 비아냥거리고 비난하면서 자신만 객관적이고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상대방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믿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특히 아주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심층을 대면하지 않고 표층만을 분석하고 수정하려고 해봤자 말짱도루묵이다. 이는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래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이 위치한 좌표를 그나마 자각하고 그것으로 부끄러워하거나 눈을 돌려 타인을 이해하는 데 그것을 사용한다면 한결 나아진 인간관계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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