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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역전된 피라미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2. 6. 14:57

역전된 피라미드.


아무도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라미드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면,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위를 향하고 있다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높은 곳은 좁고, 낮은 곳은 넓다.


높고 좁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것들을 쳐내야 한다. 차별과 배제의 행위는 '효율적인 관리'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도 우리와 평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위로 올라가는 여정에서 그들은 그저 걸림돌일 뿐이다. 일단 오르고 나서 그들을 위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높이 올라야 멀리 보는 법이고, 그래야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합리화를 해댄다. 이렇게 하여 풍성한 인간관계는 어느새 시간 낭비와 에너지 소비로 전락해버린다.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한다면서,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파른 피라미드를 자꾸만 미끄러져 가면서도 오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그 모습을 설명해 보라. 아니, 이중잣대를 늘 들이대고 남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타적인 목적을 위해 피라미드를 오르는 이기적인 행위를 하는 그 사람에게 자기자신이 아닌 타인을 대입하고 관찰하여 평가를 내려보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좁은 인간관계에 갇혀가면서도 그것이 깊이 있는 인간관계라고 자위했던 적이 있다. 인생엔 결국 진정한 친구 한 두 명이면 된다는 말을 내 상황에 적용해가며 합리화를 해댔다. 그러나 '적은 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단지 '많은 사람과 관계 맺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 아님을 난 나중에 깨달았다. 그것은 '많은 수의 사람을 쳐내야 한다'고 읽어야만 한다. 그렇다. 적은 수를 만나는 게 아니라 많은 수를 쳐내는 것이다. 그래서 적은 수를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폭력이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린 일상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그들을 내 인생의 걸림돌이나 주변인으로 보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 삶을 살아내는 존재로 볼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피라미드 높은 층에 있는 사람들은 소위 거물급들만 만나고 교류한다. '그들만의 리드'에 스스로 갇혀 그 안에서 오는 이익에 만족하기를 기뻐한다. 피라미드 아래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날 시간도 없고, 그들은 자기 밑에 일하는 사람이 '관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끼리끼리가 아니냐며 그럴듯한 합리화를 해댄다. 물론 자기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들이대서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과 만나야 할 사람을 솎아내지 않을 수는 있다.


피라미드에서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의 눈은 언제나 더 높은 층을 향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나마 타인을 위한다는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인정 받고 싶고 상 받길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동안 피라미드를 올라오며 흘린 피와 땀을 보상 받는 것이 피라미드 위의 힘을 아래로 흘려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귀중한 가치로 자리잡게 된다. 목적은 목적으로 여전히 남겨둔 채 일단 보상이라도 받자는 심보가 작동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피라미드 위의 힘은 언제나 위에 고일 수밖에 없다.


한 번 크게 미끄러지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든 사람도 왕왕 있다. 나는 다행히 나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것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아래의 차별의 논리로 인간관계를 바라보던 관점이 평등하고 존귀한 인격체의 만남의 관점으로 전환되었다. 공부만 잘하고 사회에서 인정 받는 지위에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암묵적으로 우습게 봐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완전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이었다.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성한 세상을 고작 내가 잘하는 것 하나로 모두 설명하고 규정하고 편가르려고 했던 것은 어리석음이라고밖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오늘은 독서모임 가족과 점심을 같이 했다. 다른 분야와 다른 관점, 다른 취미를 가졌지만 사람을 함부로 깔보거나 편가르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사람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만나도 그것이 시간 낭비라거나 에너지 소비로 여기지 않고 그 만남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이런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공감하며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낯설고 새롭지만, 지경이 넓어진다는 것은 그 낯설고 새로운 자극도 풍성함으로 번역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아직도 난 좁고 이기적인 놈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난 행복하다. 홀로 빛나려 했던 과거를 버리고 빛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알고 보니 이렇게 넓어지는 과정이 결코 내리막길로 치닫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오히려 상승하는 것이다. 서로를 공감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품는 것, 차이를 다름으로 이해하고 다양성을 사랑하는 것, 그 다양성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다양성 중에 하나일 뿐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 올라갈수록 좁아지지 않고 오히려 넓어지는 것. 인생은 어쩌면 역전된 피라미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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