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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8. 24. 08:26

섬.

마음은 젖은 옷처럼 무겁기만 한데, 눈 앞엔 연분홍의 눈부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이었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장관 앞에서 난 이미 몸과 마음이 둘로 쪼개어진 채 차마 그것들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잔잔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조용히 춤을 추는 자연의 모습들이 모두 나를 조롱하며 수근덕대는 것처럼 얄밉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밝고 아름다울수록 나완 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고, 나를 더욱 대적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무죄를 자랑하며 순수하고 떳떳하게 빛나는 것들이 가장 날선 칼이 되어 아픈 상처를 깊숙이 찌르는 법이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 난 정해진 수순을 밟는다. 고립된다. 조용히 섬이 된다.

내가 우울할 땐 모든 세상도 다 우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나 망각의 동물인 우리 인간에겐, 그 우울함도 시간이 지나면 어쨌거나 사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고나면 그때의 그 생각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치졸하고 옹졸한 생각에 불과했는지를 알아채며 홀로 심한 수치심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나는 또 고립된다. 섬이 된다.

섬이 된다는 것. 우린 누구나 수도 없이 섬이 된다. 다시 대륙과 합치려 하는 순간 누군가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또 다시 주춤하며 섬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험도 부지기수다. 세상은 날 전혀 몰라주는 것 같고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매몰차게 잠기는 시간이다. 우리가 외롭다거나 버려졌다고 느끼는 그 시간. 섬이 되는 시간.

인생은 어쩌면 혼자 섬이 되는 시간의 반복적인 패턴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닐까. 대륙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수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로 섬은 소수의 대명사다. 비록 자기중심적인 자기애와 교만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그 섬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성장과 성숙이란, 얼마나 많은 시간 섬이 되어보았는지, 그 섬에서 어떻게 하여 빠져나왔는지에 대한 열매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섬이 되는 시간을 갖기에, 그 시간들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지나치게 부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섬에서 머물던 시기와 거기로부터 빠져나오게 된, 각자의 작은 내러티브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단 생각이다. 이 시대의 화두인 혐오와 배제와 차별은 타자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다. 자기자신에게도 향해야 한다. 우리가 타락하는 계기는 타자를 혐오, 배제, 차별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그렇게 할 때다. 타자를 향한 혐오, 배제, 차별은 타락의 결과일 뿐이다.

괜찮다. 섬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다 섬이 된다. 그시간들을 겪으며 얻었던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눌 수 있다면. 그런 공동체가 있다면. 정죄와 비난이 아닌, 성과 속을 무 자르듯 구분하지 않는,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받아주고 격려해주는 공동체. 신뢰를 강요받지 않고도 신뢰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 마음이 움직이고 함께 함을 감사할 수 있는 공동체. 세워주고 세움 받는 공동체. 살리는 공동체. 자책하고 감추고 포장하는 위선은 타자를 향한 혐오, 배제, 차별을 부추길 뿐이다. 그런 인식론적 폭력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섬이 되는 시기에 있는가. 그렇다면 염려 놓고 잘 다녀오시게. 그리고 다녀와서 나눠주시게. 듣고 배울테니. 그대도 그대가 떠났을 때 대륙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어보게나. 더 풍성한 우리가 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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