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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안내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8. 24. 08:27

안내자.

가장 빛났던 순간도 가장 형편없던 시기로 기억되곤 한다. 시간이 지나서 재해석이 가능해졌을 때에도 여전히 빛나는 순간이 있을까. 과연 나는 오늘 마주친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살아내왔을까.

결국은 해석 아니냐고, 그래서 나중에 해석만 좋게 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보지 못한 자임이 분명하다. 해석자도 재해석자도 자기자신이다. 그 삶을 살아낸 당사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해석은 결코 주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시에, 주관성에만 치우치지 못하도록 끊임없는 도전을 받으며 지속적인 수정이 이루어진다. 그 도전은 특히 ‘자기 객관화’를 요구한다. 어쩌면 성숙함이란 자신을 얼마나 객관화시켜 바라볼 줄 아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적어도 한 번 쯤은 처절하게 무너져본 경험의 소유자를 좋아한다 (그저 어려웠던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갑질해대는 재벌 2세들도, 피라미드의 꼭대기 층에 자리잡은 아무개 사람들도 모두 겪는다. 내가 말하는 무너짐은, 그 사건 이후로 다시는 기존으로 돌아갈 수 없는, 즉 비가역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칠전팔기해서 기존의 꿈을 이뤘다는 식의 영웅담에 등장하는 어려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너져보기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과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을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마음이 낮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방향을 전환했거나 진행 중인 사람을 좋아한다. 타자를 자신처럼 캐어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어찌보면 이들은 소위 실패자나 약자로 불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피라미드에서 미끄러진 뒤 힘을 내서 다시 오르는 사람이 아닌, 그 체제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 비록 그 체제를 제거해버릴 힘은 없으나, 끊임없이 그 견고한 성벽에 작은 균열을 내는 사람들.

보통 이들은 섬으로 존재한다. 즉, 소수다.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런 섬들의 연합을 소망한다. 허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생각, 그리고 이런 접착제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내치지 않고 협업을 도모할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하다. 견고한 피라미드 체제에 저항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섬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지만, 자칫 독불장군의 독단과 독선을, 받아들여지지 않고 버려졌다는 생각이나 분노와 원망 등 반동적으로 체제로부터 튕겨났다는 상처로 말미암은 효과가 섬에게 쉽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에 막 들어온 사람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필요하듯, 섬으로 막 분리된 사람들에게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이미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 섬들의 연합을 소망하는 사람, 반동적인 힘 너머에 있을 새로운 대안을 꿈꾸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가이드가 있다면 참 좋겠다. 접착제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도, 접착제가 다가갈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말이다. 마땅한 모델이 없는 시대다. 중간에 끼인 세대. 우리에겐 정말 적절한 안내자가 필요하다. 섬이 고전하다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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