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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소셜 넘버, 그리고 차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2. 18. 02:38

소셜 넘버, 그리고 차별.

택스 리턴. 미국 와서 여덟 번째다. 매년 초 늘 성가신 문제 중 하나다. 캘리포니아 와서는 공교롭게도 알러지 시즌과 겹쳐서 내겐 더욱 신경이 쓰인다.

회계사에게 돈을 주고 의뢰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어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편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늘 1040 폼을 다운받아 직접 매뉴얼로 해왔다. (영주권도 변호사 없이 혼자서 이것저것 보며 직접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스트럭션을 꼼꼼히 보게 되는데, 작년에는 명시되지 않았던 항목이 올해엔 명확히 적혀 있었다. 제작년까지처럼 차일드 크레딧을 제대로 받게 위해서는 아이도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엔 그게 명시되지 않아 제출한 뒤 리뷰와 함께 돌아온 공식 서류에는 돈을 더 내라고 적혀 있었다. 차일드 크레딧을 내가 요청한 것만큼 받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한참을 기다려서 마침내 연결된 안내원과의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들으니 작년부터 변경되었다는 것이었다. 젠장.

어제 시간이 나서 1040을 끄적끄적 거리고 있는데, 작년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스트럭션을 보니 소셜 시큐리티 넘버가 있는 아이가 없는 아이보다 네 배의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내 아들도 그 넘버를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작년부터 나와 아들은 영주권자로 등록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영주권 받자마자 아들 넘버를 신청했었다면 작년에 더 돈을 내지 않아도 됐던건데... 젠장. 그만 난 울분이 터져버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얼른 아들 넘버를 신청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필요한 건 여권과 영주권, 단 두 개밖에 없었다. 가까운 오피스를 찾아보니 집에서 2마일 거리.

내가 2011년 클리블랜드에서 그 넘버를 신청할 때가 생각났다. 거기서 너다섯 시간은 족히 보냈었다. 대부분은 멍하니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겁이 났다. 이번에도 그러면...

시계를 보니 2시 50분. 오피스는 4시에 닫는다고 했다. 일단 가보자는 심산으로 곧장 달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이 너다섯 명밖에 없는 것이었다. 한산해서 파리가 날릴 지경이었다고나 할까. 신청하고 다시 차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들에게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서 결국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2주 뒤면 도착한댄다. 이렇게 금방 끝날 것을! 이제 아들 넘버가 있다 치고 그걸로 차일드 크레딧을 다 받아서 1040을 작성해보니 올해엔 좀 돌려 받게 됐다.

미국에서 겪는 합법적인 차별에는 절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내가 영주권이 있어서 어제와 같은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거지, 만약 아직 비자 신분이었다면 똑같이 아이 양육을 해도 크레딧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 키우는데 소셜 넘버가 있고 없고가 도대체 왜 중요한지. 이런 차별을 만드는데 선수인 트통령 체제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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