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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007에게 살인 면허가 있다면, 과학자에게는 의심 면허가 있다. 의심하지 않으면 과학은 없다. 순수한 호기심? 착각하지 마시라. 당신이 생각하는 그 순수함은 진짜 과학자들의 세상에서는 온갖 의심들로 가득차있다. 의심이 없으면 호기심도 없다. 호기심의 다른 말은 의심이다.
창의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당신. 당신의 아이가 창의적이라는 평을 들으면 기분 좋아하는 당신. 그거 아는가. 창의력이야말로 보통 남들이 관심 없거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엉뚱하게도 의심을 갖는 것이다. 창의적인 당신의 아들. 다른 말로 하면 의심이 특별나다는 말이다.
의심하는 행위를 악하다고 진단하는 건 선하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데, 이런 판단이 모순이자 경솔한 까닭은, 언제나 이런 말을 지껄이는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하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선하다는 말과 같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의심은 선한 자의 최후의 적이 아니다. 의심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또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모순된 궤변이다. 그렇게 해서 유지할 수 있는 건 선함이 아니라 무식이요 옹졸함이요 편협함이자 이기요 자기애요 가식과 거짓 따위다. 물론 스스로는 그것들에게 순수함이라는 명패를 달고 싶겠지만 말이다.
의심하는 자가 악한 자라고 떠벌리는 부류는 모든 인생의 역경도 저주라고 판단하는 부류와 같거나 큰 교집합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경 자체를 바라거나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역경을 통해 성장과 성숙하는 사람은 많다는 사실이다. 의심도 마찬가지다. 의심 자체를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통해 영육간의 강건함을 얻으며 풍성한 은혜를 만끽하는 자는 없을지 몰라도, 의심을 통해 신앙의 깊이와 풍성함을 얻는 사람은 많다.
역경이 이겨내고 재해석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듯이 의심도 충분히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역경보다 나는 의심이 가지는 결과적인 유익이 더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을 이루기 위해 역경을 일부러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만, 믿음과 신뢰의 깊이와 풍성함을 위해선 일부러 의심도 가져보는 게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보단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마귀라면, 의심이 아닌 두려움을 더 이용할 것이다. 의심에 빠지면 큰일 날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그게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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