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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수치와 동질감 사이에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2. 18. 02:38

수치와 동질감 사이에서.

내 얼굴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면서부터일까. 아니면 혹시 나에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걸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더욱 피부에 와닿게 된, 대부분의 40-50대 한국 남자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동질감은 이러한 경직성을 포함한다. 그래. 시대. 시대 탓이라고 해두자. 문화 탓이라고 해두자. 우리 모두는 시대의 아들들이기에 함께 그 시대를 살아오며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된 상처라고 해두자. 예전엔 그것이 상처인지도 잘 몰랐으나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렌즈로 곁눈질하거나 직접 착용하게 되어 다다른 약간의 자기객관화라고 해두자.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 상처 또한 여백이다. 타자에 의해 눌렸거나 스스로 누른 솔직한 반응들. 그리고 늘 꾹 삼켜야만 했거나 삼키도록 강요 받았던 마음의 응어리들. 우리들의 바탕이 되어버렸다. 표현하지 않아도 머리를 통하지 않아도 곧바로 느껴지는 그 무엇. 우리가 느끼는 동질감의 대부분은 어쩌면 과거의 아팠던 그 침묵 속에서 견뎌내고 대항하여 살아남아야 했던 무언의 압박들과 폭력들의 흔적이 아닐까. 그것들이 암묵적인 우리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미국에 살며 가끔 경험하는 한국인의 추태, 비신사적인 언행들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이 미국에 사는 타국인들의 눈에는 곧 한국인의 정체성이 아닐까. 나도 한국인이고 나만 다른 것처럼 시늉하는 것도 코미디에 불과하다. 부끄러움과 동질감 사이에서 나는 오랜만에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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