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영웅의책과일상

김정형 저, ‘창조론’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4. 18. 13:53

 

 

성숙한 창조 신앙으로.

김정형 저, ‘창조론’을 읽고.

하나님을 문자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면서도 스스로 기독교 정통임을 자처하는 근본주의자들이나, 고작 반지성/반과학적인 주장 (이름하여 유사과학)에 머무르면서도 감히 과학이란 단어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주관적 해석을 진리인듯 자신있게 강요하는 동시에, 자칭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창조과학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가진다. 영어로 ‘Creationism’이라 명명된 이 입장은 우리말로 넘어올 때 ‘창조론’으로 오역되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왔다. 저자 김정형은 책의 서두에서 이 오역을 먼저 바로 잡는다. 근본주의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의 반지성적인 창조에 관한 입장은 ‘창조설’로, 이에 반해 ‘창조론’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창조에 관한 교리’라고 정의한다. 이 책의 주제이자 제목이 ‘창조설’이 아닌 ‘창조론’임을 주목할 때, 우린 저자가 창조과학의 오래된 논쟁적인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우리의 창조 신앙이 창조설에서 창조론으로 나아가길 염원한다. 더불어, 과학 시대를 맞이한 지 이미 오래인 현대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현대 과학을 배척하지 않고 품는 창조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의 부제는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이 책의 기본 구조는 ‘소박한 창조 신앙’에서 ‘성숙한 창조 신앙’으로의 진화 과정이다. ‘첫 번째 순진성’이라고 본인이 명명한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에서 출발하여, 자신과 전통이라는 한계를 넘어, 더욱 풍성해진 창조론, 즉 ‘두 번째 순진성’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여정에서 험준한 산과 깊은 골짜기를 지나야만 했다. 이는 아마 나를 포함하여 8,9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겪은 비슷한 여정일 것이다. 가치관과 믿음의 혼란을 불러오는 그 어두운 나날들. 하지만, 확신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의심의 어두운 숲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는 사탄의 유혹이 아닌 연단의 과정이다. 두렵고 힘들지만 그 여정을 통과하면,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더욱 커지고, 개인의 협소한 구원론 위주의 사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그 경계를 넘어 더욱 풍성한 다양성과 함께 성숙한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성숙한 창조 신앙도 이러한 연단의 과정을 겪어낸 열매일 것이다.

에세이 형식까지 겸하고 있어 이 책의 앞부분은 읽어나가기가 어렵지 않다. 반면, 중간 부분을 읽어나갈 땐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 저자의 치열한 고민과 연구, 성숙한 신앙과 믿음을 가능하게 했던 피와 땀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비록 신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저자의 학문적인 이야기를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곧이어 뒷부분에 등장할 저자의 성숙한 열매를 기대한다면 천천히 시간을 내어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성숙한 창조 신앙 편에서는 과학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창조 신앙의 현 위치를 검토할 수 있으며, 창조에 관련된 오래된 논쟁을 넘어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창조 신앙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할지 가늠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구원론이 지나치게 강조된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건강한 창조론이 한국 교회에서 함께 강조되길 소망한다. 그러면 나를 구원하신 예수만 감사할 게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아가 나뿐만이 아니라 타자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더욱 풍성한 감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창조과학을 포함한 여러 창조설로 인해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방향과 답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부디 이 책이 창조과학 논쟁이 자취를 감추고 건강한 창조론이 회복되는 데에 있어 하나의 작은 등불이 되길 기원한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