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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아서.

프레드릭 뷰크너 저,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를 읽고.

어렸을 적 경험한 아버지의 자살. 뷰크너의 거의 모든 글에 망령처럼 따라붙는 이 사건은 그의 시간을 두 세계로 나눈다. 그는 이를 각각 ‘시간 이전 (Once Below a Time)’과 ‘시간 이후 (Once Upon a Time)’라는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구분한 뒤, ‘시간 너머 (Beyond Time)’로부터 구원의 어떤 비밀이 우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시간 속으로 침투해온다고 믿는다. 시간 너머의 어떤 능력이 우리 모두의 인생과 모든 시간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세계의 구분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로 대표되는 첫 번째 세계로부터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의 시작인 두 번째 세계로의 진입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두 세계 모두가 어떤 초월적인 존재와 힘의 주관 하에 놓여있다고 보는 건 물론 개인의 믿음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뷰크너는 솔직담백한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그의 정제된 신학적 성찰을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쉽게 풀어내면서 그 초월적 존재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러므로 뷰크너를 읽는다는 건, 두 세계를 통과하는 모든 인간의 삶이 놀랍게도 ‘하나님을 향한 여정’임을 발견해내고 내 삶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이 책 역시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여정’의 일부다. 한국어로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라고 번역된 그의 작품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 이 책은 그 작품의 일부를 포함하기도 한다 – 다소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이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이번에 세 번째로 만난 그의 글을 읽으며 앞선 두 책을 읽을 때와 동일한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뷰크너뿐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여정’도 다시 멈춰 서서 귀 기울이고 조용히 바라보면서 묵상할 수 있었으며, 거기서 공명되는 어떤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습관이 될 만큼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영향 아래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혹은, 철저히 어둠 속에서 혼자인 것만 같았으나, 뒤돌아보니 정말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안도감과 평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전율의 순간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시간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순간이다. 이런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의 순간들은 살면서 종종 예기치 않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며, 당면한 문제와 다급한 욕망에 묶여있던 우리의 눈을 조금은 더 편안하게 먼 곳을 향하게 한다. 해방과 자유의 순간인 것이다.

뷰크너는 이 책에서 고통은 물론 치유하는 기억의 힘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된 그의 여러 작품에서 ‘고통과 기억의 치유력’에 관련된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그는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버지의 자살 사건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고통의 상실은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가 명명한 ‘마법왕국’이란 기억의 방을 통해 이미 죽은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과 친구까지도 기억해내고는 그들이 남긴, 혹은 그들과 함께 겪은, 고통의 순간들을 일부러 방문하여, 그때 그곳에도 어김없이 임재했던 하나님을 소환한다. 그리곤 과거와 현재의 고통에 대한 치유를 경험한다. 뜬 눈으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얼굴과 열린 귀로도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기억이란 마법을 통해 보고 들으며, 마침내 기억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낸 아이처럼 기쁨을 회복하고 온전한 퍼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이 있다. 그냥 묻어둔 기억들,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기억들, 여전히 날카로운 송곳처럼 언제든 우리를 찌를 준비가 되어 있는 기억들 가운데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는 기억의 조각이 있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받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뷰크너의 기억 방법 (그리스도인에게 이 방법은 곧 기도와 같다)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의 순간을 통해 고통의 끝인 기쁨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기쁨을 되찾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는 일은 곧 고통을 재방문하여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밭길을 걷는 위험이나 죽음의 깊은 협곡 위를 평온하게 덮고 있는 크레바스 위를 걷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을 향한 신뢰는 의심의 어두운 숲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확연한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움의 심연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거기 바로 그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조각. 하나님의 임재. 궁극의 답. 결국엔 하나님을 찾고 그를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인간의 여정은 어쩌면 그리스도인에게만 국한된 피날레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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