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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모순된, 그러나 비겁하지 않은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8. 30. 11:24

모순된, 그러나 비겁하지 않은 삶.

심장을 조여오던 그 순간을 찬란한 햇살이 비치던 그날 오후에 맞이했던 건 내겐 행운이었다. 그 눈부시던 날 나를 압도한 기분은 뜻밖에도 배신감이 아닌 감사함과 경이감이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과 은은한 꽃향기에 내 오감은 조용히, 그러나 충실하게 반응하며 활짝 열렸고, 곧 내 이성과 감성마저도 장악해버렸다. 허파와 심장으로 공급되는 신선한 산소가 내 혈관을 금새 새롭게 하여 온몸을 진정시키는 듯했으며,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 그렇게 감쪽같이 회복되어 있었다.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던 그날 오후를 난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이후 내 눈꺼풀 안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잔상은 고통이 아니었다. 빛과 향기였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 보는 눈을 바꾸기로 한다. 같은 세상, 같은 사람들, 같은 문제 속에 살면서 나는 적어도 비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나에게 이 결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바꿔서 고통의 생성 자체를 막아버리자는 합리적인 이성의 말에 나는 충실했다.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도 못했던 어렸던 먼 과거를 회고하며, 나는 마치 지혜자라도 된 것처럼 나의 결정과 실천을 숭배하기도 했다. 이제 막 정의와 사회구조의 폐단을 알아버린 현자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통 무법천지였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어두움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일종의 사명감과도 같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렸던 것일까. 두 세상 사이에 끼인 채 삶을 살기 시작했으니.

그러나 돌아보니 그 순간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그럴싸한 표현으로 정제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두 번째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었지만, 그 눈을 통해 보는 세상과 ‘나는 다르다’는 일종의 우월감으로 어느새 나도 몰래 모든 걸 다시 내 중심으로 표백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 순간은 내가 모든 것을 나만의 정의와 불의, 나만의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누던 시작이기도 했다.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분별을, 마치 몇 남지 않은 난세의 영웅이라도 된 것마냥, 자랑스럽게 지껄이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애의 또 다른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멋적게 보이는 구호들을 외치는 내 모습 이면엔 ‘나’의 관점이 옳다는 암묵적인 확신을 가진 새로운 모습의 죄인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었다. 이전의 ‘나’는 어리고 순수해서 자기애를 자기애인지 인지하지 못했던 맹인의 자기중심이었다면, 그때 이후의 ‘나’는 방향만 바뀌었을뿐 눈을 똑바로 뜬 자기중심이었던 것이다. 그곳은 저곳의 반대가 아니라 옆동네였다.

세상을 살다보면 오히려 비겁하지 않은 행동이 비겁한 것이 되어버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생긴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바짝 타는 것 같은 긴장스런 순간이 흐르고 나면 차가운 이성이 돌아와 사태를 복기한다. 연거푸 얻는 답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완전하게 순수한 것이란 없으며, 정도만 다를 뿐이지 모두 어느 정도 모순을 품고, 또 그 모순을 본질적인 정체성으로 가지기도 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때가 온다. 모순을 빼면 오히려 실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참혹한 아이러니가 어쩌면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까운 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히 고통이 언제나 고통으로 기억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특정한 시공간에 일어나는 연쇄적인 사건들의 고리에서 가지는 의미를 우린 예측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다시 내가 예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고통의 심연에서 빛과 향기를 만나게 될지. 그러므로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비겁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깨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반화시킨 진리는 해석을 통과한 누군가의 진리일 뿐일지 모르고, 그렇다면 비겁하다는 것의 통념에서도 굳이 묶여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깨어있다 자신할 때 묶여있음을 알아채는 것이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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