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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일상의 작은 조각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0. 19. 12:40

일상의 작은 조각.

| 바람이 세찬 겨울밤, 프랜치스는 이미 잠이 들고,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난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으면, 꺽다리에 말라깽이인 남편이 식당을 맨발로 왔다갔다하면서 묵묵히 뭔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문득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전요, 정말로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A.J. 크로닌 저, ‘천국의 열쇠’ 2부에서 발췌) |

이런 문장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해냈을 때나 작정을 하고 상대를 위하여 어떤 이벤트를 마련했을 때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일상을 버틸 수 있고, 또 함께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랑은 아무런 색채가 없고 빛도 없는, 그래서 둔탁하고 미련하게 보이기도 하는 일상의 작은 조각에서 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게 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건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닌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이다. 그리움을 일게 하고, 자신의 미련함을 자책하기도 하고, 성찰도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 역시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일상의 한 조각이다. 일상이 유지되고 있을 땐 발길에 차이는 것일 뿐인 그 흩어진 조각들. 단 하나라도 사라지게 되면, 그 구멍은 전체를 삼키기 시작한다. 우리가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소중히 바라봐야 할 이유이자 진정한 감사의 이유다. 흩어져있는 파편들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깊은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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