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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먹고 싶은대로 음식을 고르고 요리하고 사먹고 싶어하는 아이가 원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그 간절한 소망에는 책임감이 없다. 어른이 되면 많은 제약에서 풀려나 맘대로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유아적인 발상일 뿐이다. 책임 진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로부터, 원치 않더라도, 자유가 주어지지만, 정작 어른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자유함의 기쁨보다는 책임감의 무게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또 하나의 제약이 된다.
자유함의 자리에 늘 함께 하는 책임감의 존재는 자유를 제약으로 여기도록 만들고, 급기야 그 무게에 짓눌린 어른은 또 다른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어쩌면 책임감이 결여된 갈망일지 모른다. 마치 자기가 아이 때 그랬던 것처럼.
한편,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으려는 계략은 인간에게 주어진 두뇌로 인해 정말 많은 진보가 이미 이뤄졌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극단에는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이면서 철저히 이기적인 방법도 어느 정도의 안전망을 보장하면서 존재할 것이다. 재력과 권력의 더렵혀진 존재 가치 또한 이런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자유와 제약의 변증법적 발전은 책임을 매개로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는 자유인지 제약인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린 거라면서 마인드 콘트롤 같은 시도를 하며 마치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자유는 그저 잡히지 않는 구름이나 마약 같은 이상일 뿐이라며 인생을 다른 쪽에서 달관한 지혜자의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물론 압도적으로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한 깊은 사유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이다. 아주 가끔 자신에게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불이익을 당했을 때 잠시 곱씹어보는 정도에 그친다. 이런 면에서 철학자나 신학자나 혹은 소설가나 시인은 소위 전문가라고 봐도 그리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런 사유를 즐기며 고뇌한다. 그리고 그 쓴 열매로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곤 한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직장의 직원으로서 여러가지 다양한 책임감에 노출될 때, 내가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부끄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 신앙이라는 단어, 뭐라고 불러도 좋다. 자유에 책임이 따른다는, 이 자명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 제약 가운데 깃든 자유를, 자유 가운데 깃든 제약을, 그 야누스의 두 얼굴 같은 속성을 언제나 직시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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