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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성.
아파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회복되었을 무렵 드는 생각. 회복된 눈으로 보는 세상. 단조롭고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일상으로 그저 다시 돌아가는 것뿐인데, 그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모든 게 새롭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소중하게 보이고, 심지어 그 안에 세세하게 스며든 신적인 그 무언가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 마치 다시 찾은 탕자처럼, 그렇게 사소한 일상은 소중한 의미를 띠게 된다. 그 지긋지긋하던 일상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 마음은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했던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가진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은 아마도 모든 인간의 공통된 속성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뒤늦게 깨달은 소중함도 육체에 다시 생기가 돌고 정신이 다시 몸과 마음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만큼 회복되고나면 조금씩 사라져간다. 일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는 다시 인생이란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의미를 상실한다. 영혼에 각인될만큼 그렇게나 깊은 깨달음이었건만, 몸과 정신의 회복은 그 모든 감사와 기쁨을 한낱 얄팍하고 천박한 감정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마치 잠깐 술에 취했던 것처럼 감상에 젖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고, 살아남기 위해선 다시 제대로 고삐를 잡아야만 하는 거라고 속삭이면서 다시 자기자신의 왕이 된다. 알다시피 그 왕좌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리석음의 극단에 있던 바로 그 자리다.
이러한 모순된 두 모습은 우리들의 일상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변증법적인 발전은 논리적, 합리적인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모순을 갖고 산다. 그리고 우리 모두 발전의 다른 단계에 처해있다. 개별적인 인간 안에서도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인 상태를 지니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타자들이 보여주는 일면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 규정지어버리는 행위는 정말이지 미성숙한 인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우리 모두는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역동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철학함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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