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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
모처럼 하루 휴가를 냈다. 남들 다 출근할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파자마 바람으로 부엌에 내려가 버터 향 가득한 토스트를 굽고 따뜻한 커피를 내린다. 아들은 벌써 일어나 책을 읽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 약간 부은 얼굴. 아들이라 그런 걸까. 곁에 아내가 없기 때문일까. 사랑스러움과 애틋함이 몰려온다.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밀린 이메일을 정리한 뒤 어젯밤에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쓴다. 창밖에 보이는 맑고 높은 하늘, 살랑이는 바람. 창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이한다. 살짝 아프던 머리가 개운해진다. 갑자기 다시 깨닫는다. 오늘은 휴가라는 걸. 이 여유가 좋다. 특권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좋다.
점심으로 뭘 먹고 싶냐고 물으니 아들이 판다 익스프레스라고 대답한다. 집에서 걸어가면 25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넉넉해서 앱으로 미리 주문과 결제를 한 뒤 일부러 산책 삼아 걸어가기로 한다.
반팔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따스한 햇살. 캘리포니아의 가을은 종종 마음을 감동시킨다. 지금 여기가 꿈만 같다는 생각이 또 밀려든다. 바깥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아들 녀석. 나오자마자 운동화 착용감이 좋은지 뛰기 시작한다. 나도 덩달아 뛴다. 아직은 나보다 느리지만 언젠간 나를 앞서리라는 생각을 하니 아들이 문득 친구 같고 더 커 보인다.
판다 익스프레스에 도착하니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달리기 시합을 여러 차례 하면서 오느라 숨이 찬 상태에서 웃고 떠드느라 시간을 단축시켜버렸던 것이다. 여전히 불친절한 종업원들과의 상투적인 대화를 끝낸 뒤 밖으로 나와 차가운 콜라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다 먹고 나서 내가 물었다. 아니. 배 불러. 음… 그럼 서점에 가서 책 좀 구경할까? 응. 서점에 들어가니 의외로 아들의 눈이 반짝인다. 나름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서 (부모 입장에선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런 건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아이들 책 코너에 가니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이 시리즈는 어떻고 저 시리즈는 어떻다는 둥.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종알거린다. 귀여운 녀석. 한 권 사줄까? 물으니 이내 됐다고 말한다. 궁금한 게 있긴 한데, 이미 도서관에서 이북으로 홀드해 놨다고 말해준다. 자기가 일 순위라고. 곧 읽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돈 쓰지 마라고. 다 컸다 싶었다. 기분이 묘했다.
집에 돌아오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모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천천히 걸어왔음은 안 비밀이다. 서점에서 나오니 배가 조금 꺼졌는지 “아이스크림” 하면서 혼자 낄낄댔기 때문이다. 나는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콘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제안대로 망고맛 모찌 아이스크림이 오늘은 훨씬 더 맛있었다.
해가 저문다. 커튼을 내리고 등을 켠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책을 편다. 아직 오늘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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