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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옥: 희망 없는 노예 된 삶.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노름꾼’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을 때마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심리에 대한 그의 탁월한 묘사 때문이다. 마치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본 것 같은 깊은 통찰은 그만의 고유한 필체까지 탄생시켰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열매를 깊게 한입 베어 물어 맛을 본 독자라면 그의 중독성 강한 필체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다. 나 역시 그 마력에 기꺼이 길들여지기를 자처한 독자 중 하나로서 그의 작품세계를 2년째 여행 중이다.

 

일반적인 소설가는 중요한 등장인물을 문제에 빠뜨리고 결국에는 구원을 베푼다. 위기 가운데 그 인물이 점점 무너져가는 과정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뒤, 절정에 이르러서는 무언가 묶였던 것이 풀리거나 어떤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그 인물의 회복이나 새로운 삶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러한 소설의 전형적인 갈등 해소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변주라면 변주라 할 수 있고, 돌연변이라면 돌연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바로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이랄까 누구도 구현해내지 못했던 깊은 통찰력이랄까 하는 고유한 특징이 발현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추락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낭떠러지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생각에 잠겨 있을까. 만약 소설가가 등장인물을 이러한 위기 상태에 놓았다면, 그는 그다음 단계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까.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그 등장인물이 자칫 죽을 수도 있는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디디지 않고 돌이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로소 긴장을 풀게 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인물에게 기어이 한 발자국 더 가도록 만든다. 외부 상황이 아닌 그 인물의 내면을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진창 속 바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처절하고 자학적인 유머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독자들은 이런 뜻밖의 장면을 목도하면서 은밀한 공감을 하게 되는데, 이는 특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느껴지는 역설적이고 초월적인 어떤 병적인 심리 상태의 극한을 전혀 고상하지 않은 언어로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떨어져 죽을 뻔했네’와 같은 정도의 갈등 해소를 통해 독자들에게 대리만족과 함께 적당한 교훈을 던져주는 방식이 아닌, ‘아니, 거기서 한 발자국 더 가면 어떡해! 진짜 죽으려고 그래?’와 같은 탄사를 독자들이 내뱉도록 하면서 숨죽이며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디딘 소설 속 인물의 심리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방식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적당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내고 일상을 회복하는 적당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대할 때 이질감 혹은 천박함 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끝까지 읽어볼 가치나 동기를 발견하지 못한 채, 겉으로는 작품이 어렵다는 고급스러운 말로, 속으로는 뭐 이따위 작품이 다 있냐는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며 책을 덮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본성은 극한을 맛보거나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열린 아주 좁은 동굴의 심연과도 같은 법. ‘될 대로 되어라’, 혹은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어’라는 식의 체념과 포기 그리고 운명론적이고 초월론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인간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 인물을 정신병에 걸렸다거나 미친놈으로 치부하고 만다면, 우리는 결코 그 사람을 인간을 깊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적어도 나는 내 주위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결코 그런 사람에게 맡기면서 상담을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인간 심리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에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많은 부분이 투영된 인물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수기 형식으로 써진 중편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 알렉세이는 노름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대기를 대충이라도 훑어보게 되면 그가 얼마나 돈에 민감한 사람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설 원고 한 귀퉁이에 적힌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숫자들이 그가 선불로 받거나 빌리거나 갚아야 할 액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헌사한 그의 속기사이자 두 번째 아내였던 안나를 만나기 전까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얼마나 도박에 심취해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톨스토이와는 달리 귀족 출신도 아니고 평생 생계형 작가로 삶을 살아갔던 그가 돈에 쪼들리면서도 도박을 즐겼다는 점은 인간의 모순된 어떤 심리를 본인이 직접 경험했다는 말이 된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속기사인 안나를 만나고 처음으로 구술한 작품이며, 단 27일 만에 완성된 즉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시기는 ‘죄와 벌’을 완성하기 직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작품과 시기상으론 나란히 어깨를 올리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노름꾼의 모순된 심리는 노름꾼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노름꾼은 돈을 잃는다. 가끔 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잃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한 숙명적인 패턴을 잘 알고 있음에도 노름꾼들은 또다시 도박장으로 향한다. 백 분의 일 확률일지라도 자신이 그 일에 해당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 알렉세이 역시 도박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무한루프에 갇히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직접 언급했듯이 도박장은 또 하나의 지옥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알렉세이의 도박에 대한 철학은 다음과 같다. 읽고 나면 ‘말도 안 된다’라는 즉흥적인 생각과 함께 조용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다는 건 이런 일견 천박한 궤변처럼 보이는 문장들 이면에 놓인 의미를 읽을 줄 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도박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는 고루한 생각,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런 생각이 더 우스운 것 같다. 도박이 다른 돈벌이 수단들보다, 예를 들어 장사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 이문을 남기고 내기로 돈을 따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사람들은 룰렛판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따내고 하는 셈이다. 이문을 남기고 일확천금을 얻는 것이 추악한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겠다. 내 스스로가 돈을 따려는 소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탓인지 몰라도, 도박장으로 들어섰을 때 내게는 그 모든 탐욕과 탐욕의 모든 추악함이 왠지 더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서로가 격식을 차리지 않고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대할 때가 가장 기분 좋은 법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속인단 말인가? 정말이지 부질없고 생각이 모자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린책들 판 25, 27 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다음은 주인공 알렉세이가 비장한 마음으로 도박에 임했음에도 계속해서 돈을 잃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표현한 문장이다. 노름꾼의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서서 마지막 한 발자국을 더 디디게 되는 그 심리가 단적으로 잘 표현된 문장이다.

 

“이쯤 해서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나는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운명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또 그녀를 혼내 주고 약 올려 주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걸 수 있는 가장 많은 돈, 4천 굴덴을 걸었지만 잃고 말았다. 그러고는 흥분한 나머지 남아 있던 돈을 모두 걸었는데 또 잃고 말았다.” (열린책들 판 44 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이어지는 문장은 반대로 알렉세이가 엄청나게 돈을 따내기 전의 심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부분이다. 운명론적인 생각은 예상 건대 모든 노름꾼들이 거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이따금 정말이지 이상한 생각이, 얼른 보기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결국에는 그런 생각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런 생각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소망과 합쳐지게 되면 때로는 그것을 숙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예정된 어떤 것으로, 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예감의 결합이라든지, 예사롭지 않은 의지의 강화, 그리고 자신의 상상에 의한 중독이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이.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밤 내게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열린책들 판 200 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소설의 마지막 부분, 시간이 흐르고 알렉세이는 한때 그가 시기하기도 했던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를 우연히 만나고 그로부터 뼈에 사무칠 만한 말을 듣게 된다. 다음과 같다.

 

“당신은 삶을 거부했고, 자신과 사회의 이익도 거부했고, 시민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의무도 거부했고, 자기 친구도 거부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어쨌든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돈을 따는 것 말고는 그 어떠한 목표들도 단념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추억까지도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전 당신이 삶의 치열하고 힘찬 순간들을 살아가던 때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자신이 가졌던 훌륭한 인상들을 당신은 모두 잊어버렸어요. 이제 당신의 꿈과 절실한 희망이란 고작 홀수와 짝수, 검은색과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 열두 숫자들 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열린책들 판 253 페이지에서 부분 발췌)

 

그러나 불행히도 알렉세이는 그 당시 여전히 도박장에서 삶을 탕진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선택한 도박이었지만, 그가 도박을 삼켰는지, 도박이 그를 삼켰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그는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도박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그는 단 1 굴덴으로부터 1백70 굴덴을 따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핑크빛으로 채색하면서 그의 현재 노예 된 삶을 끝내 버리지 못한 채 내일 다시 도박장을 향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난다.

 

도박에서는 단돈 백 원에서 시작하여 백만 원을 따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문은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기 마련일까. 알렉세이 역시 어마어마한 돈을 따내고 황당한 결정을 내린 뒤 그 돈을 짧은 시간 동안 탕진해버리는 모습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잊지 않고 보여준다. 자기 얼굴에 땀을 흘려서 버는 정직한 돈의 가치와 일확천금을 노리며 오로지 운에 기대어 기대하는 돈의 가치. 그 가치는 비단 돈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 나아가 한 가정의 삶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의 마지막 모습에서 우린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이란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지옥일 테니까.

 

*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22765477768221

2. 백치: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81911478520287

3. 악령: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671867029524729

4. 미성년: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791541264223971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36636616381098

6. 죽음의 집의 기록: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311510975560328

7. 가난한 사람들: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633890636655692

8. 분신: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717746821603406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817986684912752

10. 노름꾼: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87547675916374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272627856115307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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