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선택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 13. 06:25

선택

무언가를 준비할 때의 설렘과 기대는 언제나 긴장을 동반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응시하는 마음은 초조하기 마련이다. 관건은 그 초조한 마음에 쫓길 것인지, 아니면 그 마음을 내치거나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즐길 것인지에 있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단,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그 나무 하나만이 아닌 전체 숲을 관망하려는 마음의 여유를 그 순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긴장과 초조를 설렘과 기대로 받아들일지 불안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일지, 둘 중 어느 편을 선택할지에 따라 실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리의 장기 기억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반복될 경우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내면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가느다란 실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때 느꼈던 약간의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쩌면 전율과 환희의 순간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 내던져졌을 때에만 만끽할 수 있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구원의 순간인 것이다.

그 순간들은 항상 무대 위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주로 무대 아래나 뒤, 우리의 일상에 속속들이 숨어 있다. 만화나 영화에서는 과거에 경험했던 어떤 커다란 사건이 악몽처럼 혹은 계시처럼 혹은 보금자리처럼 떠올라 그 사람의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른 것 같다. 드물게 찾아오는, 조명이 환하게 켜진 무대 위에 올라가는 인생의 순간들이 아닌, 너무나도 평범해서 들춰볼 것도 없을 것 같은 우리의 소박한 일상 중 어떤 순간들이 알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떠올라 우리의 현재를 적시기 때문이다. 향수에 젖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이 있는 경우, 그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특별한 순간보다는 오히려 아무런 특색을 가지지 않는 사소하디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우린 한동안 그 기억들의 무게에 압도되곤 한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사용했던 칫솔, 그 사람이 늘 앉던 소파, 그 사람이 신던 낡은 운동화 한 켤레… 그 사람의 일상이 흔적으로 남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비록 빛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기억을 관장하고 있는 중추다.

어떤 특별한 사건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일상의 무게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숲이라는 일상의 무게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의 무게를 거뜬히 뛰어넘는 법이다.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는 말도 나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저마다 다른 콘텍스트를 살아내는 우리는 힘든 순간, 벗어나고 싶은 순간, 죽고 싶은 순간을 살면서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그 순간이 가지는 특별함이 아닌 그 순간이 가지는 사소함에 대해 조금만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조금은 그 순간을 다르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초월적인 자세로, 조금은 지혜로운 자세로.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릇  (0) 2022.01.24
산 그리고 중독  (0) 2022.01.13
꺼려지는 훌륭한 사람  (0) 2022.01.12
품위에 대하여  (0) 2022.01.07
즐긴다는 것  (0) 2021.12.2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