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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크기와 모양이 다를 뿐 사람들은 저마다 그릇을 가진다. 어느 정도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며, 또 어느 정도는 본인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노력 및 실천에 따라 수정된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한 사람이 가진 그릇의 변화 역시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그 사람이 처한 시공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양은 냄비와 뚝배기의 비유는 사람이 가진 그릇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열을 가하면 빠르게 뜨거워지는 양은 냄비처럼 어떤 성취로 인해 타자의 인정보다 빠르게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자의 객관적인 인정을 수차례 받아도 스스로를 좀처럼 높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자기 검열이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보다는 겸손과 신중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일에 진심인 경우가 많다. 누가 뭐래도 스스로 성실하게 지속한다. 남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만을 위해 달리지 않는다. 마치 열을 가하면 뜨거워질 때까지 시간은 좀 걸리지만 한 번 뜨거워지면 열기를 오래 품고 유지할 수 있는 뚝배기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또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한다. 사람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전자의 사람들은 일 처리할 때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에 만남과 헤어짐이 상대적으로 잦으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죄책감을 지울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기에 급급하여 늘 쫓기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 할 땐 잠시 즐거울 수는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 즐거움의 순간에도 그것이 가진 가벼움과 일시성을 예감할 것이다. 소모성이 강한 즐거움은 안정감보다는 불안을 야기시킨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사람은 아무래도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쓸데없이 무게를 잡는 진지파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그릇에 관해서는 좀 묵직한 편이 낫지 않을까. 사람의 가벼움은 실망스럽기도 하거니와 스스로에게도 요란한 인생을 제공할 것이기에 인생은 아무래도 가벼워지기보단 무게와 깊이를 더해가는 게 바른 방향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의미도 잘 모른 채 단순함을 무조건 미덕이라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단순함은 가벼움도 아니고 얕음도 아니다. 오히려 단순함은 무게와 깊이를 더해가다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종착역에 가깝다. 지혜로운 사람이 보이는 천진함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무게와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단순함은 그저 무식함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성실함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언가를 그만두지 않고 지속한다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가깝다. 효율만을 추구하고 돈이라는 결과론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성실함이야말로 무식함과 동일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가치관에 저항하고 싶다. 남은 인생 동안 할 수만 있다면 비효율적이더라도 성실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아가고 싶다. 양은 냄비 같은 사람이 아닌 뚝배기 같은 사람. 눈이 깊은 사람이 짓는 천진난만한 웃음. 인간관계에서 얻는 의미와 행복은 이런 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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