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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로부터 난데없는 위로를

도제희 저,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저자는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당선, 등단한 작가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훌륭하다. 직장에서 난데없이 퇴사한 이후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으며 치유를 경험한, 보기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책 소개란에 적힌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수영을 배운다면, 퇴사라는 인생의 수렁에서 저자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택한 생존법은 고전 읽기다”라는 문장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사건과 상황만 다를 뿐 나 역시 인생의 낮은 점에서 책이라는 세상을 만난 후 궁극적으로 다다른 곳이 고전 문학이었고, 그 절박한 읽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나와 전혀 다른 필체를 구사하고, 관심 분야도 많이 다른 것 같고, 유일한 공통점은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했다는 사실밖에 없는, 전혀 몰랐던 작가의 책을 나는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해버렸다.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읽어본 사람은 드문 도스토옙스키. 그의 작품은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분량에서부터 두꺼운 벽돌을 연상시키며 독자를 가뿐히 압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쉽게 외면을 받곤 한다. 그러나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경솔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도 벽돌 같은 외형만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어려운 내용이라 판단한다면 곤란하다. 용기를 내어 벽돌 뚜껑을 열고 일단 읽기 시작하면, 철학적이거나 학문적인 문장들이 아닌 3류 소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통속적인 문장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스토옙스키를 도전하길 원하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한 마디는, 부디 벽돌에 눌리지 말고 뚜껑 한 장만 열고 몇 페이지만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는 것이다. 이것만 실천에 옮겨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한 가지 더. 도스토옙스키는 통속에서 심오를 끌어내는 작가다. 이 점을 마음에 두고 통속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레 심오의 단계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그저 통속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본인의 힘들었던 순간을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그와 함께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그 경험의 열매인 셈이다. 그러나 그에 따라 책의 내용도 힘들고 무거울 거라 예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평범한 소시민인 듯하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대신하여 경험한 바를 잔잔한 에세이로 풀어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보고 듣고 만나고 겪은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에서 퇴사라는 흔하지 않은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상황과 사건에 걸맞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 혹은 대사 등을 자연스레 연결시키면서 스무 편이 넘는 꼭지로 구성된 에세이를 풀어나간다. 갑의 자리보다는 을의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글로 풀어내기에 도스토옙스키 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저자도 나도 낮고 누추하고 눅눅한 진창 같은 곳에서도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비친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은 유경험자이며, 그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기에 도스토옙스키는 그야말로 정확한 표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데없이 터져버린 사건과 상황, 난데없이 다가온 도스토옙스키. 혹시 아는가. 도스토옙스키는 또 다른 위로받을 독자를 위해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그 독자가 바로 당신일지.

#샘터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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