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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해도, 보지 못해도
한강 저, ‘희랍어 시간’을 읽고
불연속성, 불친절함,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의식 저 아래에서 퍼 올린 조각난 단상들,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드는 상처의 깊은 흔적과 그 기억의 파편들, 그것들을 활자로 대면하면서 생경하게 느껴지는 강한 이질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거부할 수 없는 불편함.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때론 숨이 막혀서, 때론 내 심장이 귓가에서 하도 쿵쾅대서 잠시라도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공간으로 말하자면 인적이 드문 시골, 시간으로 말하자면, 곧 해가 뜰 새벽 다섯 시 정도가 아니라 가장 어둡고 가장 적막한 새벽 두세 시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간 동이 트겠지만 당분간은 도저히 아무런 희망의 씨앗도 발견할 수 없는 시간. 밤이지만 최은영이 표현한 ‘밝은 밤’이 아닌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감싸 지지 않을 슬픔과 치유되지 않을 상처로 어두운 절망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툭툭 끊어지는 불친절한 묘사들이 저마다 깊은 우물을 머금고서 활자화되어 있다. 정유정의 휘몰아치는 압도적인 서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서사보다는 묘사에 중점을 두고, 말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목소리를 부여하여 말하게 하는 정적인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이 머금고 있는 그 어둡고 무거운 것들을 우리가 쉽게 내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 것들은 한낱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고 말 법한 장치나 기법 정도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들의 내면에,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면 깊은 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인간 본성과 심리를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효과를 내며, 마치 분절된 꿈의 조각처럼, 그래서 날 것 그대로의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 탁월하다. 모든 사람들 안에 내재되어 있지만 한결같이 꺼내 보려 하지 않는 그 무엇. 어쩌면 한강 작가의 작품이 그 유명세와는 달리 읽기 어려운 건 '나'이지만 내가 아니고 싶은 혹은 '나'이면 안 되는 모습들, 그 부서지고 의도적으로 잊힌 모습들이 문득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희랍어 시간’을 읽는 동안 차라리 급박한 이야기의 전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말을 잃은 한 여자와 서서히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 깊은 상처가 낸 치유되지 않은 두 과거와 그것들을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두 현재가 희랍어 강좌를 매개로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 생명과도 같은 안경을 떨어뜨린 밤, 말을 잃은 여자의 도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따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남자. 말을 잃었기에 몸을 움직여 기척을 내야 했고 남자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던 여자. 그날 밤 이 두 사람 사이엔 어떤 전류가 흐르고 있었을까. 남자의 작은 방 안에 흐르는 공기 속엔 서로에 대한 공감과 치유의 냄새가 섞여있지 않았을까. 함께 함으로 말미암아 시간은 어느덧 새벽 다섯 시가 되어 곧 동이 터오를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강 작가는 둘 사이의 결말에 대해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작품을 끝내버리지만, 나는 자연스레 바라게 된다. 서로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아가 서로의 상처로 말미암아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치유가 되어줄 수 있기를. 여자는 말을 되찾고, 남자는 유전적인 시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빛을 볼 수 있게 되길.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설사 여자가 다시 말을 찾지 못해도, 남자가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어도 서로의 존재로 말미암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현재의 삶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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