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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역사성과 의미를 묵상하며

존 도미닉 크로산, N. T. 라이트 외 저, ‘예수 부활 논쟁’을 읽고

미국 와서 교회력에 친숙해지고 난 이후 매 사순절마다 예수의 부활에 관계된 책을 한 권씩 읽는다. 부활절이라고 삶은 달걀 위에 알록달록 물감을 칠해서 하나씩 나눠 먹는, 나로선 잘 이해가 안 가는 퍼포먼스보단 누군가의 글을 읽고 깊이 묵상하며 부활절을 맞이하는 편이 사순절을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크로산과 라이트의 주장과 해석을 비교 대조하고 그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몇몇 신학자들의 논문을 한데 모은 책이었다.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간된 ‘예수 부활 논쟁’이라는 책이다. 약 3년 전부터 나에게 외면을 받은 채 줄곧 책장에 꽂혀있었다. 하필 그즈음이 신학 책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사그라들 때였는데, 그 이후로 읽는 책의 사 분의 삼은 문학 책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꾸준히 비문학을 읽어오는 습관을 좇아, 그리고 한국으로 이사하기 전 책을 처분하기로 했던 계획을 좇아 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순절을 맞이하여 드디어 손에 들고 읽게 된 것이었다.

이미 크로산과 라이트의 신학적인 노선과 사상이 어떤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예수의 역사성, 복음서의 역사성 등의 주제에 관련해서 책도 몇 권 읽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젠 굵직한 부분이 아니라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학 책을 읽을 때 대충 읽고 넘어가거나 건너뛴다. 나름대로의 노하우랄까.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닌 내가, 그리고 읽고 얼마 지나면 또 다 까먹게 되는 내가 세세한 것들까지 밑줄 그으며 읽는 게 투자 대비 소득이 별로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 건 신학자들이 계속 우려먹으며 연구를 해나가면 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젠 신학 책을 읽을 때에 예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렇게 적당한 선이 그어지기까지 백 권이 넘는 신앙/신학 책을 읽어야 했지만 말이다.

예수의 부활은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바울 서신과 사복음서, 그리고 외경이나 기타 자료들을 통해 개연성에 의지하여 세워진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다. 궁극적으로는 과학과 역사의 영역, 즉 이성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인 문제인 것이다. 물론 개연성을 따지며 문헌들을 비교 연구하는 과정은 이성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복음서보다 바울 서신이 먼저 쓰였고, 사복음서는 원본이 존재하지 않으며,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사본밖에 남지 않은 복음서에만 등장한다. 이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크로산과 라이트가 모두 동의하듯이 예수의 부활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는 하프나 켜며 하루 종일 찬양과 기도만 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아니라 신자들에 의해서 삶의 실천 속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모습이라 믿는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성에 대해선 아직까지 난 라이트의 쪽에 서 있다. 라이트의 초기 기독교의 출현은 예수의 빈 무덤과 부활 후 출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주장에 마음이 간다. 크로산의 말처럼 부활에 관련된 모든 복음서의 기록이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진 않다. 나는 과학자이지만 여전히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과학적인 예수의 육신으로의 부활을 믿고 싶다. 부활이 역사적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이 그것의 효과만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나에게 부활은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사복음서의 무게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앞서 말했듯이 어차피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영역이기에 나는 그렇게 나의 믿음을 유지할 생각이다.

크로산은 라이트를 문자적으로 부활을 믿는다고 비판한다. 마치 모든 성경을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게 좀 더 깨우친 사람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나 역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처럼 문자주의에 갇힌 성경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부활에 관련된 사실에는, 누군가는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할 것이겠지만, 라이트처럼 문자적인 부활을, 예수의 육신의 부활을 믿고 싶다.

사순절이 늘 고난주간에 초점을 맞추며 예수의 고통만을 묵상하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기간이 아니라 이렇게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부활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는 어느 정도 신앙을 오래 가진 사람이라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라이트의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니 이 책을 들여다보며 신학계의 흐름을 파악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새물결플러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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