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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흐르는 시간은 앞이 아닌 위를 향한다는 생각. 그래서 흘러간 시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아래로 쌓일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 과거에 사로잡힌 채 현재를 과거의 연장으로 살아내는 방식도 건강하지 않지만, 현재에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마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 역시 건강하지 않다. 전자는 현재 없이 과거를 사는 사람이고, 후자는 과거 없이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둘은 모두 시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시간은 연속적이어서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재는 과거가 되고 있으며 과거는 현재를 존재케 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우린 시간 밖에서 살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부로 이분법으로 나누고 어느 한쪽만 택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살아서도 안 된다. 그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의 의미가 과거에서 온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기억 상실증 환자를 떠올려 보라. 모든 게 그대로인데 자기 자신의 기억만 사라져 버린 상황. 기억은 과거이고, 과거가 사라진 현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미 중독자다. 의식주가 해결되어 편하고 안락한 상황만으로 만족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그 이후를 묻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물으며,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 묻게 되어 있다. 작은 것 하나에서도 의미를 묻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어쩌면 현재의 행복은 과거가 맺은 기억의 열매에서 따낸 단 과즙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보낸 11년이 저물고 있다. 아직 세 달 정도 남았지만, 마음은 발이 없기에 몸보다 앞서 가 벌써 거주민이 아닌 나그네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조금은 초탈한 것 같고, 또 조금은 더 허무함을 느낀다. 가벼워지는 쾌감의 뒷면이다. 나는 가까운 곳이 아닌 자꾸만 먼 곳을 응시하게 된다. 자주 텅 빈 눈이 된다.
살아왔던 나날들이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건가 싶은 마음에 갑작스레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하고 자꾸만 묻게 된다. 열 번 물으면 아홉 번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대답을 하는 내가 보인다.
쫓기는 인생이 아닌 무언가를 쫓는 인생이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인생임을 인정하게 된다. 효용성이 아닌 보다 본질적이고 숭고한 가치를 위해 사는 인생이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쓸모에 대한 가치 기준이 과거의 그것과 비교해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효율적이길 원하고 상품 가치성을 따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자식이 되어버렸다. 더욱 서글픈 건 그렇게 살면서 좀 더 효율적이었을 때마다 나름대로 우월함을 느끼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남은 시간이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내 생각은 자꾸만 나를 향한다. 내 안으로 침잠하게 되고 무언가를 더 살피게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텅 빈 내 속을 발견하고는 그 경박함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어느덧 마흔다섯이다. 아, 나는 언제쯤 눈이 깊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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