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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문의 몰락, 그리고 그것의 의미

토마스 만 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천 페이지를 빼곡히 수놓은 문자들은 무덤덤하게도 한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1877년 열네 살의 나이에 티푸스로 죽은 마지막 아들 하노에 이르기까지, 사 대에 걸쳐 진행된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 작품은 하노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었던 1835년, 하노의 증조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1세의 말년을 비추면서 문을 연다.

그들은 최근에 근사한 저택을 새로 구입했다. 경사였다.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어떤 가시적인 열매는 이어지는 일의 내리막길과 종종 맞물리며 나타나는 법. 표면적으로는 기뻐해야 합당할 일 앞에서도 당사자들은 마음 어딘가에 어둡고 묵직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끼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게 된다. 기쁨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먹어선 안 되는 몰락이라는 이름의 사탕. 작가 토마스 만은 소설의 첫 장면부터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톤을 탁월하게 묘사하며 긴장을 유지한다. 따라서 독자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게 경사인지 아니면 어떤 일의 복선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그랬다. 게다가 나는 어렵고 잘 읽히지 않는다는 느낌조차 받은 나머지 잠시 다른 책을 손에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 작품의 부제 ‘한 가문의 몰락’를 다시 찬찬히 읽게 되었고, 갑자기 머리에 뭐라도 세게 맞은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가시적인 경사의 표면보다는 그 어두운 몰락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티 나지 않게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도적으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곤조곤 이런 미묘하고 조심스러운 기운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그 기운의 정체는 알다시피 몰락이다. 이 책은 몰락의 냄새가 나는 작품인 것이다.

몰락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덴브로크 가문에 큰 재앙이 들이닥친 적은 없었다. 천재지변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삼 대에 걸쳐 가문의 사업을 장남이 성공적으로 계승했다. 요한 부덴브로크 1세, 그의 아들 요한 부덴브로크 2세, 그리고 그의 아들 토마스 부덴브로크로 이어지는, 규모가 꽤 큰 국가적인 사업은 큰 어려움 없이 사십 년 이상 비교적 잘 유지되었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아래위로 굴곡을 그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부덴브로크 가문은 파산에 이른 적도, 불법을 행한 적도, 불의한 일에 연루되어 큰 사기를 당한 적도 없었다. 작품의 마지막, 부덴브로크 가의 마지막 아들인 하노 부덴브로크의 죽음으로 인해 당시 살아남은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전과는 다른 삶을 맞이해야 했지만, 그 누구도 빈손으로 거리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은 기존의 몰락이라는 이미지에서 거품을 다 빼고 남은 알짜배기 몰락이었다. 파산은 몰락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였다. 몰락의 기운은 부덴브로크 가에 조용히 숨 쉬듯 자연스럽게 찾아왔고 사십여 년 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제할일을 다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사업과 가문의 중추인 네 명의 부덴브로크를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토마스 만의 자서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살아 숨 쉰다고 하는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이자 그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어 달 전에 읽었던 ‘토니오 크뢰거’에서 느꼈던 삶과 예술,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가운데서 고뇌하는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 속에서도, 비록 ‘토니오 크뢰거’에서처럼 명징하지는 않지만, 다뤄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토니오 크뢰거’가 나오기 위한 전신이라 볼 수 있다. 토마스 만의 아버지 가문으로 대표되는 ‘삶과 시민성’, 어머니 가문으로 대표되는 ‘예술과 예술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그래서 두 진영 모두에 속하면서도 모두에 속하지 못한 중간인으로 평생을 고뇌했던 토마스 만. 그가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는 예술가’, ‘시민성과 예술성을 모두 겸비하는 인물’로 성장하도록 플롯을 짰던 것도 어쩌면 바로 전 작품, 즉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자신이 그려놓은 몰락이라는 이름의 알을 깸과 동시에 그 세상을 파괴하고 마침내 새롭게 태어나고자 했던 그의 결연한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토니오 크뢰거가 있기 위해선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은 필연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작품 전체에 진하게 배인 몰락의 냄새에 취한 채 작품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잔상에 의지하여 괜스레 몰락의 한숨을 쉬거나 몰락의 입김을 불어낼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이것도 합일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니까. 몰락은 몰락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작품에서 조화와 합일로 나아가게 되니까. 휴, 다행이란 생각이다.

그렇다. ‘토니오 크뢰거’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중심 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중심 주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삶과 예술,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율배반성이다. 이것은 양부모의 혈통으로 대변되기도 하는 특징이기에 특별히 토마스 만에게는 존재론적인 모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깊은 고뇌를 어찌 공감할 수 있겠냐마는,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을 며칠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맛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불어 마음 깊숙한 고뇌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놀라울 따름이며 진정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듯 삼 대에 걸친 부덴브로크 가의 사업을 대표했던 세 명의 부덴브로크들 역시 각자 개성이 강했다. 그러나 그 개성이라는 것도 그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상류층 가문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높지만 좁은 세상 속에 길들여진 구체제에 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하는 요한 부덴브로크 1세를 몰락의 전신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신은 아마도 몰락의 냄새조차 맡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여유가 있었고 합리적이었으며 자부심도 대단했다. 별 어려움을 모른 채 자식들에게 든든한 돈과 명예를 남기고 죽어간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이룩한 성공은 거침이 없었던 것 같고, 그건 다분히 시대의 조류를 잘 만났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하여, 요한 부덴브로크 2세는 그의 아버지가 가졌던 합리적인 시민성과 더불어 기독교 정신이 깃든 경건함이 가미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 경건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특히 군중이 귀족을 포함한 상류층에 대항하여 선거권에 대한 폭동을 일으켰을 때 그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내어 폭동의 불씨를 사그라지게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자신이 속한 신분의 특권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행해졌던 일이다. 그가 진정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경건한 자였다면 신분제로 인한 차별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행보를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신분의 유지를 위해 끝까지 싸웠고 그 유지야말로 질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았던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어땠을까? 그는 일찍이 결혼 문제에서도 결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하는 게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을까?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규모 있는 사업에 대한 부담감이 막중했던 탓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는 마흔여덟이란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는데, 죽기 직전으로 치달을수록 그의 진정한 자아가 긴 잠에서 깨어 나와 그는 괴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른 나이부터 대학도 가지 않고 사업을 물려받아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일을 진행시켰고 시의원에도 당선되어 가문의 위상을 높였으며 할아버지가 구입했던 집보다 더 크고 으리으리한 집을 새로 건축하여 성공의 정점을 찍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간 진정한 자아는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페르소나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는 법. 그 시기가 토마스 부덴브로크에게는 죽기 얼마 전이었을 뿐이다. 그는 마지막에 와서야 스스로를 성찰했다. 자신이 이룩해놓은 일들과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 모습이 모두 가면이자 연기인 것만 같다고 느꼈다. 회의가 몰려왔다. 비록 이튿날 다시 관성에 몸을 맡기듯 그동안 자신을 일구어왔던 시민성에 쉽사리 굴복을 당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 토마스 만은 이 부분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요한 부덴브로크 1세로부터 이어져온 몰락의 기운이 토마스 부덴브로크가 경험한 그 특별한 하루에서 마침내 분출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그 후 치통 때문에 발치를 하러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품위를 유지한답시고 외모 치장에 점점 더 시간을 할애하던 그였는데, 길거리에서 흉한 모습으로 고꾸러짐으로써 수치를 당했고, 그건 곧장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참으로 허망한 마지막이었다.

토마스 부덴브로크의 죽음으로 몰락이 멈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몰락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 십 대 청소년이 된 어린 아들 하노 부덴브로크의 죽음이 보란 듯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 대에 걸친 몰락은 완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 대에 걸친 몰락을 따라가며 눈에 띄는 사실 한 가지는 점진적인 인물의 변화다. 저자 토마스 만의 의도가 느껴진다. 요한 부덴브로크 1세에게는 철학이랄까 예술이랄까 하는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아들 요한 부덴브로크 2세에게는 그것이 기독교적인 경건함으로 메워지는가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가 구현한 시민성은 신분제 유지에 그치고 말았다. 토마스 부덴브로크에 와서는 꽤 다층적인 모습이 보인다. 작품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민성이 표면적으로는 잘 구현되고 있었지만, 내면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토니오 크뢰거에게서 나타난 예술성이 토마스 부덴브로크에게서는 자신을 성찰하는 철학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예술이든 철학이든 시민성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건 고무적인 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물론 토마스 역시 결국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말이다.

한편, 마지막 비운의 아들 하노 부덴브로크는 태생부터가 시민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토니오 크뢰거의 극한이 어린 나이에 투영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사업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학생 신분으로 당연했던 공부에도 취미가 없었다. 아버지 토마스 부덴브로크에게선 냉대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을 삶의 도피처로 삼으며 속으로 고뇌를 삼키다가 죽음과 화해를 해버린 인물이었다. 이렇게 보면 요한 부덴브로크 1세로부터 시작된, 가문의 성공을 견인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민성이라는 가치는 요한 부덴브로크 2세와 토마스 부덴브로크를 거쳐 하노 부덴브로크에 이르러 소멸되고야 마는 것이다. 하노 부덴브로크의 죽음이 조금 과하게 그려졌다는 인상이 강하긴 하지만, 토마스 만은 사 대에 걸친 가문의 몰락을 이러한 시민성의 소멸 (혹은 파멸)로 설명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과연 이 파멸은 그런데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시민성을 신분제나 특권 혹은 기득권과 같은 범주로 보고 예술성을 예술이나 철학 혹은 종교나 성찰과 같은 범주로 본다면, 토마스 만은 시민성에 저항하는 것이면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인간 스스로의 성찰로 이어진다고 본 것 같다. 그가 고발하고 청산해야 할 대상은 시민성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질서 (?)였던 것이다. 사람을 옭아매고 가두어 옹졸하고 편협한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무언의 힘. 안정감과 특권의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그 무엇. 반면, 성찰로 이어지는 예술이나 철학은 보다 인간다운 그 무엇이며 영혼에 자유를 가져다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대비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토마스 만의 고뇌를 공감하게 된다. 그러한 고뇌 가운데서 이렇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예술성은 아마도 그가 마침내 얻은 자유와 승리의 열매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충분하지 않냐고, 되물으면서.

#민음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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