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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은밀한 반역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7. 20. 20:45

은밀한 반역

진정한 새로운 시작은 낮아지는 거라 했다. 낮아지는 것이란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자기 객관화, 다른 하나는 상황 직시다. 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후자는 나를 제외한 타자와 세상에 대해서다.

놀랍게도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모두를 강력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거부는 외면과 자기기만과 거짓과 위선과 분열과 도피로 이어진다. 낮아지기는커녕 한층 높아진 자세로 타자를 은밀하고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거짓 겸손의 옷을 입는다. 피해자 코스프레와 과장된 자기연민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며 타자로부터 동정을 얻어내어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각 사람에게 다른 모습으로 보여야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효율이 커지기 때문에 언제나 타자를 관리하고 감시하기 바쁘다. 본래 모습이 들통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거짓으로 창조한 세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존재는 아마도 그 세상을 창조한 거짓 신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건 진정성이 거세된, 만들어진 페르소나다. 신만 인간을 창조한 게 아니다. 인간도 인간을 창조한다. 재료는 거짓과 위선, 그 재료의 본질은 이기적인 자기애다.

자기 객관화와 상황 직시를 거부한 결과는 자기를 바꾸는 새로운 시작이 아닌, 새로운 도화지 위에서 감히 새로운 붓을 드는 창조자가 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만 바꾸지 않은 채 타자와 세상을 거짓된 자아에게 길들이려 하는 금지된 장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스스로가 신이 되려는 자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건 거짓된 창조이자 반역일 뿐이다. 반역자여, 도피자여,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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